요한계시록 20장 1-6절의 해석: 시대구분론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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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0장 1-6절의 해석: 시대구분론의 입장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Herman A. Hoyt)
http://kccs.pe.kr/thesis060.htm
이 글은 그레이스 신학대학원(Grace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수를 역임한 허만 A. 호이트(Herman A. Hoyt)가 [시대구분론적 전천년설]의 입장에서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 관한 "해석법의 문제"를 다룬 글이다.[Herman A. Hoyt,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The Meaning of the Millennium: Four Views(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77). Edited by Robert G. Clouse. pp. 63-92.]
어지러운 이 세상은 인류가 즐길 수 있는 성경에 기록된 천년왕국 즉 문명의 황금시대가 주는 혜택을 갈망한다. 이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 천국으로부터 신에 의한 초자연적인 대변동의 표시로써 등장할 것이다. 그것은 삶의 상태들이 대환란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에 지상에 세워질 것이다. 오늘날의 사건들의 움직임이 왕국의 성립이 멀지 않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모든 신학자들이 이 점에 동의한다고는 생각지 말자. 실제로 예언의 분야에 있어서 성경 연구가들의 견해의 차이를 우리는 피할 수 없다. 기독교 여러 분야에서 교회의 휴거, 대환란 그리고 영원한 상태에 관한 논제들에 대해 상당히 의견을 달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년왕국의 주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본인의 이 주제에 대한 접근은 시대구분론적 각도에서 본 전천년설로서 종종 특징지어진다. 본인은 예언의 말씀들에 있어서 이 주제의 순서적 및 점진적 전개로써 이 견해를 간주하고 싶다. 좀더 표현을 빌린다면, 천년왕국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성경의 넓은 주제에 대한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1. 성경이 선포한 왕국
신학자의 특별한 종말론적 설득에 관계없이 만약 그가 성경을 주해하는 데에 진지한 노력을 가한다면 성경이 하나님왕국의 교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왕국이란 말 자체만 성경에서 450회 이상 나타나고 있다. 이 중에 대략 200회 이상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왕국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르침은 왕국이란 말에만 국한할 수 없다. 이 왕국사상은 특별한 용어 이상이며, 성경 전체에 흐르는 사상이다. 요한 브라이트(John Brigh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사상은 참된 의미에서 성경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이다.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에서 크게 부각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장과 폭을 통하여 하나의 형태나 또 다른 형태 속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신구약성경은 하나의 드라마에 대한 두 막으로 볼 수 있다. 제1막은 제2막에서 드라마의 결론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이 없이는 연극은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제2막은 제1막에 비추어서 읽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막의 의미를 놓칠 것이다. 만약 책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면 우리는 아마 "하나님의 왕국 도래에 관한 책"이라고 당연히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배에 관한 문제는 성경의 창세기 제1장에서부터 소개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이 만들어진 직후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첫 명령은 만물을 지배하라는 것이었다(창 1:26,28). 이 주제가 최후에 하나님의 보좌가 지상에 성립될 때까지 그리고 구속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다스릴 때까지(계 22:5), 성경을 통하여 점진적인 경이 속에서 펼쳐진다(계 22:1,3).
다음에 이어지는 성구들은 성경을 통한 사상의 움직임을 지적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목적이 지상에 왕국을 세우는 것임을 지적한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제사장의 왕국으로 이스라엘을 조직하셨고(출 19:5-6), 모세는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었다(출 7:1; 행 7:35).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가 장래에 나타나기로 약속되었고,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기로 약속되었다(신 18:15-18; 행 3:19-23).
다윗은 이스라엘 위에 기름부음 받은 왕이며, 그의 왕국은 영원토록 계속되기로 되어 있었다(삼하 7:12-16). 그리고 이 왕국은 솔로몬을 통하여 영구화되었다(대상 28:5,7). 선지자 이사야는 한 왕의 도래를 선포하였고, 영원히 계속될 한 왕국에 대해서도 선포하였다(사 9:6-7). 후에 다니엘은 천상의 하나님께서 이 왕국을 세우실 것이며, 결코 멸망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였다(단 2:44). 인자와 같은 한 사람이 이 왕국의 보좌 위에 앉을 것이며, 모든 백성, 모든 나라, 모든 방언이 그를 섬길 것이다라고 하였다(단 7:13-14,27). 마리아에게 파송된 천사는 하나님께서 다윗 왕의 보좌를 그녀의 아들에게 주시겠다고 전하였다. 그리고 야곱의 집 위에서의 그분의 통치는 영원할 것이다라고 전하였다(눅 1:32-33). 부활후 예수의 40일 지상사역 기간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이 왕국에 관한 일들을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그들 마음 속에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행 1:3,6).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왕과 왕국의 도래를 기대하면서 살 것을 권하였다(딤후 4:1). 그리고 성경의 맨 마지막 책에서 일곱째 나팔이 소리를 낼 때,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왕국이 드디어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라고 선포되었다.
2. 성경해석의 원칙
성경의 말씀은 신구약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시된 것이었다. 모세는 이 점에 대해서 모압 평원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고별 연설에서 분명히 밝혔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여러 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나라에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다(마 23:27). 신약성경에도 반복해서 그것의 메시지가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주어졌다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눅 1:3-4; 요 20:30-31; 행 1:1; 롬 1:7; 빌 1:1).
이 메시지는 일정한 도덕적, 영적 특혜가 그들에 의해서 인식되어지도록 만드신 한 메시지와 한 방법을 구성하였다(딤후 3:15).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서 그들에게 가르쳤다(신 29:29; 딤후 3:1-17). 그것은 그들에게 위험에 대해서도 경고하는데 도움을 준다(고전 10:11). 그리고 이 모든 것 이상으로 그것은 그들에게 흑암 가운데서 이 세상의 공포 속에서 소망을 준다(롬 15:4).
이런 이유 때문에 메시지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그러면서도 분명한 방법으로 주어져야 했다(고전 2:1-5). 왜냐하면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을 성취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성경의 언어까지도 성경이 원래 주어진 백성들의 평범한 언어로 쓰여졌다. 구약은 백성들에게 친근한 히브리어로 쓰여졌고, 신약은 당대의 사람들이 공통어로 쓰고있던 헬라어로 쓰여졌다.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 하나님이 말씀을 이해하도록 한 방법이다. 선지자, 선생, 신학자 또는 교회 지도자들과 같은 특별한 인물들이 언어와 백성들 사이에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백성 어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성경은 싣고 있다는 것을 성경해석의 원리로 삼는 이유이다. 분명히 언급한 이 원칙이 성경의 문자적 및 평범한 의미가 성경을 읽는 해석가의 원칙이어야 하며, 신구약 모든 성경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역사적 내용이 문자적으로 받아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리적 내용도 역시 이런 방법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도덕적 영적 정보도 이와 같은 패턴에 따라야 한다. 예언의 말씀들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성경에 비유적인 언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언어가 적용된 곳에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문자적 방법의 적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전한 것이 아니고 부분적으로는 어떤 다른 방법의 해석도 원래 의도된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탈취하는 것이 되고 만다.
전천년설의 가르침에 대한 문자적 접근방식은 왕국의 시대구분론적 교리가 절대적인 기본이다. 이 교리에 찬성하는 이나 반대하는 이나 모두가 이 교리가 근본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발부르드(Valvoord)는 분명히 전천년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천년설은 구약의 해석에서 원칙적으로 발견된다. 만약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예언적 기대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그려준다. 그들은 확신하면서 도래할 구세주요, 구원자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신 메시아를 기대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의와 평강과 번영의 왕국으로 한 구속된 땅위에서 끌어들일 것을 기대하였다. . . . 전천년설의 해석은 수백 절의 예언의 증거들에 대한 오직 문자적 해석만을 제시한다.
이 해석방법의 정해진 적들도 전천년설의 교리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의 접근 방식의 중요성을 마찬가지로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알리스(Allis)는 "구약의 예언들을 만일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현시대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거나 간주될 수 없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플로이드 해밀톤(Floyd Hamilton) 역시도 같은 관점에서 전천년설을 반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구약예언의 문자적 해석이 전천년설 주창자들의 말대로 그리스도의 지상통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이 구약의 문자적 해석을 바탕으로 고대하던 그리스도의 왕국이 바로 이것이었다.
전천년설이 우세한 곳은 그것이 성경의 문자적 해석 위에 세워진 것일 뿐만 아니라 전체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신학의 모든 체계도 이 점을 바탕으로 나온다는 것이 주목될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무오성으로 출발하여 기독 교리의 모든 점을 고루 다룬다. 실제로 그것이 믿는 자로 하여금 전체로서의 성경과 적당한 관계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모든 측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통일된 원칙이다. 나를 반대하여 나도는 험담과는 달리 그것은 성경의 일부 본문 위에 세워진 주장도 아니요, 제멋대로 선정된 말씀 본문 위에 세워진 교리도 아니다. 그것은 성경을 포함하는 성경의 문제들과 직면한 성경 자체에만 그것을 국한한 그리고 비참하게 실패하고 공포에 사로잡힌 세계에 소망을 심어주는 신학의 한 체계이다.
무엇보다도 전천년설은, 모든 철학 위에 뛰어나고 탁월한 역사철학을 제시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모든 측면을 고려한다. 그것은 현세와 미래의 삶에 고려를 제시한다(딤전 34:8). 그것은 영과 육에 관하여 관심을 갖는다(고전 15:46). 그것은 지상과 천상의 처소를 인정한다(고전 15:48). 그것은 현재와 천상에서의 삶의 가치만큼이나 지상에서도 같은 수준의 삶에 가치를 제시한다. 그것은 역사의 중요성을 통찰하며(롬 15:4; 고전 10:11), 우리가 현세에 적용할 수 있는 것과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믿을 만한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제안한다.
전천년설은 하나님께서 점진적으로 역사를 통하여 움직이고 계시며, 사건의 진행을 좋은 결과에로 끌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주목시킨다. 죄로 인하여 인간성이 실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움직임은 점진적이며, 상승적이고, 하나님의 권능 아래서 장래에 대완성을 결국 이룰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였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병의 정복, 일부분이지만 전쟁의 억제, 생명의 연장, 사회적 정치적 폐단의 시정, 우주의 정복 그리고 토지 생산의 증대면에서 우리는 성공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의 본문 배경 속에서 이 지상 위에 모든 문명의 황금 시대가 도래할 그 날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철학이 의미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역사에 낙관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것은 삶의 모든 진실된 가치들이 보존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의 왕국에서 완전한 성취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인류의 노력과 모든 땀을 흘리도록 자극한다.
3. 왕국에 대한 해석
학자마다 다른 해석법을 가지고 왕국에 관한 주제에 접근을 시도하므로 다양한 해석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 관점에 관한 아홉 가지의 조사가 성경적 관점에 이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그리스도전에 이 왕국이 이스라엘에게만 국한하였다고 믿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사도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생각이 그들에게 이스라엘 왕국회복에 관한 질문을 예수께 던지게 하였던 것이다(행 1:6).
2)"하늘의 왕국"이란 문구를 일부 학자들은 천국에 있는 왕국으로 믿고 있으며, 하늘나라에서의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고 주장한다. 마태복음 19장 23-24절과 같은 성구는 지금 하늘나라에 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하며, 마태복음 25장 34절은 미래를 말한다고 한다.
3)성경말씀을 영해함으로써 교회는 왕국의 전체로써 이해되어 왔으며, 골로새서 1장 13절 같은 성구는 이 견해를 입증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천주교회는 보이는 교권주의적 교회를 왕국으로 해석하였고, 종교개혁가들은 보이지 않는 교회를 왕국으로 지적하였다.
4)일부 신학자들은 영해 원리에 상당히 지배를 받고 있어서 그들은 인간의 심령 속에서의 하나님의 지배를 왕국이라고 해석하였다. 중생이 새 삶의 출발점인 까닭에 누가복음 17장 20-21절은 이 견해를 증명하는데 인용되고 있다.
5)순수한 물질주의적 그리고 육체적 왕국의 해설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 학자들은 높은 도덕성이나 영적 목적으로 해석하였고, 그들의 평가 속에서 왕국에 관한 이 견해를 입증할 본문으로 로마서 14장 17절을 내놓고 있다.
6)최근 몇 년 동안 사회조직이나 인류사회의 전반적인 개선은 미래에 올 종말론적 왕국에 대항하여 현재의 왕국에 대한 환영받는 설명을 제시하였다. 전 교회연합운동은 이러한 형태의 논리로 제약된다.
7)일부 학자들은 과감히 성경 저자들과 심지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장엄한 현혹이라는 말로 비평하기를 마지않는다. 그들은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종말론적인 체계를 모두 배제한다.
8)바르트(Barth)와 브루너(Brunner)는 기독교인 일반에게 가장 환상적인 견해의 왕국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역사의 시공간적 사건들의 주기로부터 그것을 들어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속하는 영원한 영역에로 이 왕국을 옮겨 놓았다.
9)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그리스도의 재림당시 지상에 세워질 왕국에 대해서 말한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신앙이었다. 첫 250년간 주장된 견해이다. 어거스틴에 의해서 이 견해가 반박을 받고 그의 주장에 따라 신앙인들로부터 전천년설이 외면을 당하기까지는 이것이 성경적인 견해로 믿어져 왔다.
4. 왕국에 관한 성경적 해석
이상 언급한 견해들을 종합 검토해 볼 때, 왕국의 성경에 관한 학자간의 이론이 분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당한 부분의 의견의 격차는 틀림없이 좁고 편협적인 견해에서 싹튼다. 왕국의 연구 가운데서 한정된 관점은 이러한 상황을 불러일으킨다. 일부 학자들은 다니엘이 "왕국의 위대함"(단 7:27)에 관하여 예언으로 선포한 것이 무엇인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단일 원리에로 왕국에 관한 주제를 축소하려는 노력과 단순한 통일의 선호 때문에 그들은 무한한 다양성을 무시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고 또 만일 그 결과가 하나의 권위를 갖는 의미가 된다면, 성경의 구절인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어떠한 접근도 성경적 패턴의 해석으로 추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경 자료만의 연역법적 연구는 적극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왕국의 참된 개념은 한 구절의 본문 말씀에서 감히 찾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성경 자료들이 조사되어야 하고, 이 검토가 역사의 움직임과 성경신학의 방법을 추구하는 신의 계시인 점진성과 관련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고전인 {왕국의 위대한}(The Greatness of Kingdom)의 서술에서 맥클레인(McClain)은 왕국 개념에 대한 임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성경자료의 일반적인 조사는 "왕국"의 개념이 적어도 세 개의 필수적인 요소, 즉 첫째, 적절한 권위와 권능을 소유한 통치자, 둘째, 지배될 종속 영역, 그리고 셋째, 통치기능의 실제적 실행을 포함하는 전체 상황을 포함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상과 같은 설명은 상호간의 적절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세 요소 모두가 없이는 왕국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권위를 가진 지배자라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인 의미에서 볼 때, 영역과 통치를 빼고서는 어떠한 왕국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왕국에 관련해서 왕국은 그분의 피조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지배로서 폭넓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왕국에 관한 말씀들을 정독하면 몇몇 다분히 중요한 구별이 나타난다. 많은 말씀들은 왕국을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으로써 제시한다(시 10:16). 또한 다른 말씀들은 왕국이 하나의 분명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단 2:44). 몇몇 말씀들은 왕국을 범위에 있어서 우주적인 것으로써 묘사하고 있다(시 103:19). 그러나 또 다른 말씀들은 왕국을 지상 위에 선 하나의 지역적인 통치로써 정하고 있다(사 24:23). 어떤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것으로써 묘사되고 있고(시 59:13), 다른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중재자(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스리신다(시 2:4-6). 많은 본문들이 왕국을 전적으로 미래에 올 것으로 제시한다(슥 14:9).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왕국이 현실적인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시 29:10). 많은 곳에서 왕국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 위에 무조건적으로 통치하실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단 4:34-35).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이 통치가 인간과 맺으신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절충된 하나의 계약 위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시 89:27-29).
많은 학자들이 왕국에 관한 이들 문제점을 화합시켜보려고 시도했고, 일부 시도는 다음에 따르는 것에 하나나 또 그 이상의 것에 표함 된다. 첫째, 두 가지 측면을 가진 한 왕국이 있다. 둘째, 권능과 은혜의 왕국인 두 왕국이 있다. 셋째, 하나님의 통치는 한편 우주적 주권이며, 또 다른 한편 신정통치이다. 넷째, 하나님은 현재 왕이시나 그의 왕권은 여전히 미래에 있다. 다섯째, 현재적이고 승리적인 현실이 있으나 장래의 통치는 훨씬 승리적이다. 여섯째, 그리스도의 왕국이 있고, 하나님의 왕국이 있다. 일곱 번째, 하나님의 왕국이 있고, 천국의 왕국이 있다. 여덟 번째, 지상의 왕국이 있고 천상의 왕국이 있다.
가장 신뢰할 만한 설명은 두 왕국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 두 왕국이 서로가 전적으로 다르다는 거짓 주장은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들은 피조물 위에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한 통치의 두 측면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두 단어가 하나님의 통치의 이들 측면을 서술하는 최상의 단어로서 전천년설 주창자에게 그것을 요구한다. 첫째는 우주적이요, 하나님의 통치의 크기를 기술하는 것이다. 둘째는 중재적이요, 하나님의 통치의 방법을 기술하는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그것을 동일시하는 하나님의 통치의 질과 성격을 말한다.
중재적 왕국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비록 여기가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최상이지만, 우주적 왕국을 중재적 왕국에서 구분하는 일련의 차이점들을 나열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우주적 왕국은 영원하다(시 145:13).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옹위한다(대상 29:12). 통치는 거의 전적으로 섭리 즉 제 이의 원인에 의한다(출 14:21; 시 29:3; 사 10:5-15). 통치가 기적적인 사건과 같은 초자연적인 수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때도 있다(출 11:9; 신 4:34-35; 단 6:27). 우주적 왕국은 종속의 태도에 관계없이 작용한다(시 103:20; 단 4:25; 행 3:17-18; 요일 3:4,8). 우주적 왕국은 항상 영원한 아들에 의해서 항상 중재된다(골 1:17; 히 1:2). 우주적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가르친 왕국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마 6:16). 우주적 왕국은 항상 존재한다. 한편 중재적 왕국은 미래에 나타날 하나의 약속이다. 결국 하나님의 목적이 중재적 왕국에서 성취될 때, 그리고 모든 적이 결국 그 아들에게 복종하게될 때(고전 15:24-28), 그 때 중재적 왕국은 우주적 왕국에 나타날 것이며, 한 보좌만이 있을 것이다(계 22:2).
이 점까지 거론한 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정확히 말한 세 분야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기 위함이다. 첫째, 하나님의 우주적 왕국이 있다(시 103:19). 이 큰 왕국 안에 중재적 왕국으로 알려진 좀더 제한된 지역이 있다(단 2:44). 중재적 왕국 안에 또 우주적 왕국과 중재적 왕국의 일정한 특징들에 참여하는 훨씬 더 제한된 지역인 교회가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번역되어진 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주 지당하다(골 1:13). 중재적 왕국은 그리스도를 신랑 그리고 교회를 신부로서 보며, 교회가 이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교회의 구성원들에 속한다(히 12:28; 계 3:21).
5. 중재적 왕국의 묘사
여기서부터는 중재적 왕국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에 제한하여 거론할 것이다. 우리가 의미하는 하나님의 왕국은 피조물 위에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중재적 왕국이 영원하고 우주적 왕국의 인식에서 첫 장을 여는 만큼 중재적 왕국은 역시 우주적 왕국의 참된 것이 될 것이다.
이 왕국을 말함에 있어서 중재적이라는 말을 우리가 선택하였기 때문에 이 말은 특별한 개념에로 왕국이란 말을 제한하는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편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변하고 행동하며, 다른 한편, 하나님 쪽의 백성을 대표하는 신성하게 선택된 대표를 통하여 이 왕국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왕국은 지상에 사는 인류와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과 중재자가 항상 인류의 한 사람이란 점이 분명하다. 중재자란 말이 구약성경에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상당히 그와 비슷한 말이 있는데, 이들은 심판자 또는 중재자란 말이다(욥 9:33). 그러나 신약성경은 중재자를 의미하는 말이 있고, 여섯 번 성경에 나타난다(갈 3:19-20; 딤전 2:5; 히 8:6; 9:15; 12:24). 중재자의 기능은 세 가지가 있다. 그것들은 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다.
중재적 왕국에 관한 점진적 계시성으로 인하여 왕국의 수명이 계시록 이전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계시록 20장 1-7절에서 여섯 번씩이나 이 왕국이 천년간 계속 될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밀레니엄(millennium)이란 말은 헬라어 란 말의 번역에서 온 것이며, 천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중재적 왕국의 시작을 위한 준비는 창조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명령하시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신성한 기능을 행사하도록 하셨다(창 1:26-28). 이 지배권은 지상의 모든 것, 인류를 포함한 모든 것에 적용된다. 인간성은 이 기능을 행사하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하였다(롬 5:12,19; 딤전 2:14). 이 불순종이 혼돈과 무질서를 이 세상에 유입하였고(창 6:3),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당하는 불행을 초래하였다(창 6:3). 인간정부는 실패하였고(창 9:5-6), 사악한 세계정부를 방지키 위한 언어 혼란의 심판을 초래하였다(창 11:1-9).
이 지점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지를 성취키 위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셨다. 하나님은 족장들의 중재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지배하시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창 12:1-3), 아브라함을 통해서 절대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진짜 중재자들의 능력을 수행할 왕들이 나오도록 하셨다(창 14:14; 21:9-21; 22:1-9).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이삭과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 사무엘 그리고 중재적 조종의 책임을 진 왕들이 뒤따랐다.
좀더 형식인 의미에서 볼 때, 중재적 왕국은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시내산에서 또 광야생활 기간동안 모세 속에서 그것의 기원을 갖는다.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신 4:34)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통치자 모세를 통해서 통치하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의 하나님을 믿도록 하셨다.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출생"이 이루어졌다. 비록 모세를 왕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모세는 법적 기능을 행사하였다(행 7:35). 모세는 중재자로서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표하였고(출 4:16; 7:1), 또 하나님께 그의 백성을 대표하였다(신 9:24-39). 이와 같은 방법으로 모세는 장차 오실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셨다(신 18:15).
역사상에 나타난 이 중재적 왕국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는 사울, 다윗, 솔로몬의 통치기간이었다. 이 군주적 통치 형태는 예언 가운데 나타나 있으며(창 17:5-7; 35:9-11), 어떤 경고를 받고 있다(신 17:14-17). 사사 시대에는 백성들의 영적 타락으로 인하여 그들은 왕의 선택을 하나님께 요구하였다(삿 8:22-23; 삼상 8:1-9,19-20).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그들을 위해 왕을 선택하셨다(삼상 10:17-24; 12:1-25). 모세로부터 솔로몬까지 나타난 쇠키나 영광의 임재는 중재적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입증으로 받아 들여졌다(출 40:34; 대하 7:1; 느 9:19).
르호보암 시대이후로는 중재적 왕국의 기능이 점차 쇠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는 점차 간접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이 시점부터는 선지자들의 역할이 두드려졌다. 이것이 왕들의 역할 담당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이 쇠퇴가 점차 악화된 모든 시대에서 보여진다(삼상 8:7-20).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처방하였고(사 1:3-6), 다가오는 심판의 관점에서(암 5:18) 율법에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였다(사 8:20). 그러나 왕국계약의 불가침(렘 33:17-21)은 선지자들로 하여금 한 장래의 이상적 왕국을 약속하게 하였다(슥 14:7-9).
그러나 이스라엘의 변절과 타락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불만을 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떠나고 마셨다. 시내산에서부터 계속된 쇠키나 영광의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에스겔의 시대까지 일어난 발악적인 반역과 죄에로의 타락은 심각한 지점에까지 이르고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을 싫어하여 점차 떠나시는 하나님의 쇠키나 영광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다(겔 8:3-4; 9:3; 10:4,18; 11:23; 8:7-17). 백성들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 국가를 버렸다. 느브갓네살 왕에 의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파괴이후 성전이 두 번 다시 세워졌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임재하시지 않았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재적 왕국은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이 미래를 위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겔 11:16; 39:21; 43:1-7; 슥 14:1-4).
역사상에 나타난 중재적 왕국의 실패에 대한 설명은 세 가지 것에서 찾아져야 한다. 영적으로 대부분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고, 그의 율법을 지키지도 아니하였다. 지적으로는, 백성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왕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되었다(삼상 8:5,20). 거기에다 정치적으로 통치자들은 불완전함으로 가득 찼다.
장래에 대한 약속은 이러한 약점들에 대한 구제책이다. 백성의 거의 대다수가 중생을 체험할 것이다(겔 11:17-20).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화합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킬 것이다(시 110:1-3). 불완전한 왕들은 완전하신 중재자요, 왕이요,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대치될 것이다(사 42:1-4). 이 예수는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할 것이며, 세상의 헛된 감각론에서 멀리 하시며, 그의 종속들에게서 구속 사역을 면제시키시며, 완벽한 성공으로 그의 프로그램을 수행하실 것이다.
600 B.C. 이후 옛 이스라엘의 영화를 되찾고자 많은 노력들이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현재의 이스라엘 나라도 중재왕국의 초기 시기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앞에 놓인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표시는 될는지 모른다. 최종적이고 영구한 이스라엘 나라는 중재적 왕국으로 묶여 나눌 수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기다린다. 중재적 왕국은 회복 될 것이다(행 1:6). 그리고 예언은 장래에 어떤 사건이 있을 것을 선포한다(호 3:4-5).
6. 예언 속의 왕국
실질적인 역사적 상황은 중재적 왕국에 관한 예언을 위한 시기를 조성한다. 가까운 장래에 있을 사건이나 인물로 시작해서 예언자는 이스라엘과 중재적 왕국의 더 먼 장래에 있을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까지 예언을 한다. 가까운 장래에 있을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 때, 그것은 신실하고 신성한 멀고 최종적인 사건의 예시가 되었다(사 13:17-14:4; 14:5-6을 보라).
구약의 예언은 모세오경에 흩어져 있는 몇몇 다소 불투명한 성구들로 시작된다. 대부분 이것은 중재적 왕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여인의 씨(창 3:15), 셈의 장막에 거할 것이며(창 9:27), 아브라함의 자손이며(창 12:1-4), 유다의 후손인 율법을 주시는 자이시며(창 49:10), 야곱의 후손인 한 별이며(민 24:17),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이실 것이다(신 18:15). 역사적 왕국기간 동안에는 왕국에 관한 예언이 배로 늘어났다(삼후 7:1-16; 대상 17:1-14). 다윗 왕은 그의 집과 왕국과 보좌가 영원토록 보존될 것이라고 약속 받았다(대상 17:1-4; 삼후 7:14). 이것은 그의 씨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의 완전한 성취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눅 1:31-33). 솔로몬도 다윗과 같은 약속을 받았다(대상 22:6-10). 이스라엘이 쇠퇴하여 갈 때, 구약 예언은 증가되어 갔고, 모든 대소 선지서에서 이들 예언이 발견되고 있다. 이 분야의 예언 속에는 도래할 왕국에 대한 분명한 진술이 담겨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문자적인 왕국일 것이다. 이 왕국은 인간이 추구하나 결코 획득할 수 없는 하나의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왕국과도 같은 것이며, 역사상에 나타난 이스라엘 왕국과 같은 것이다. 이 왕국의 중심 장소는 실질적인 장소인 예루살렘과 그 주변이 될 것이다(욥 12-21). 진짜 왕이 물질적 왕좌에 실제로 앉을 것이다(사 33:17). 인류의 국가들이 왕국의 전투와 구원의 사역에 동참할 것이다(사 52:10). 이 세상의 사악한 왕국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갑작스런 대 재난의 종말을 맞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들을 지배할 것이다(단 2:31-45). 이 왕국은 역사상에 나타난 다윗 왕국의 부활이며 계속이다(암 9:11; 행 15:16-18을 보라). 신실하고 중생받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회복될 것이며, 이 왕국의 중심체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은 성취될 것이다(미 4:7-8; 렘 33:15-22; 시 89:3-4,34-37). 예루살렘은 위대한 왕의 수도가 될 것이며, 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전 세계를 통치하실 것이다(사 2:3; 24:23).
중재왕국의 현시(顯示) 역시도 문자적이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부분적으로는 점진적인 사건의 계시와 같은 것이다. 어떤 선지자들은 그것을 가까운 장래에 있을 일로 보았고, "잠시 후"(학 2:6-9) 또는 "미구(未久)에"(사 29:17-20)와 같은 어구를 사용하였다. 다른 때에는 선지자들이 먼 장래에 있을 일로 말하였고, "마지막 때"(사 2:2)라는 어구를 사용하였다. 호세아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스라엘이 많은 날들을 지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한다(호 3:4-5). 궁극적으로 이들 시기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벧후 3:8-10). 그러나 왕국이 세어지기에 앞서 일련의 전 세계적인 심판 즉 해, 달, 별, 지진, 홍수, 화재, 기근, 염병 그리고 모든 인류의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온갖 천재지변의 재앙들이 먼저 있을 것이다(사 24; 요엘 2:30; 3:9-15).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현시(顯示)와 그의 영광을 위한 전주곡이다(사 35:4; 40:5, 9-10). 이 모든 것은 왕국설립이 오랜 시간을 가지고 과정을 거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대변동을 통한 초자연적인 역사가 감각 경험의 분야에서 일어날 것이며,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서 인간역사의 진행을 방해하며, 자연 질서 속에 무엇인가 신(神)적인 것을 소개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사 40:5; 겔 20:33-38; 단 2:34,44; 요엘 3:1-2; 암 9:9-10; 말 3:1-6; 마 25:31-46).
도래할 왕국의 중심 어휘는 문자적으로 신인(神人)이신 왕이다. 어떠한 양(量)의 글로도 정당하게 평할 수 없는 영광이 그의 주변에 몰릴 것이다. 그의 이름과 명칭이 그가 신이며 인간이란 사실을 완벽하게 입증할 것이다. 그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사 11:1) 사람으로(사 32:1-2), 인자(단 7:13)로 정해졌다. 다른 한편 그는 "주로"(시 2:7), "너희의 하나님"으로(사 40:9-10),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사 9:6) 지정되었다. 성공적인 통치를 위한 모든 필요한 조건이 그에게 주어졌고, 일곱배의 권능(사 11:2), 절차상 완전한 권능의 행사(사 11:3-4) 그리고 의와 충실성 같은 성격의 완벽성(사 11:5)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한 신비성이 있다. 그의 경력의과정에 있어서 그는 잘리어버린다(단 9:29). 예언자는 이 종에 관한 슬픔, 고난의 복종, 만족(사 52:13-53-12)과 같은 신비스런 무엇인가를 인정하고 있다. 고난과 영광은 예언자들을 당황하게 하였고, 사람들을 낭패스럽게 하며, 사도들을 의혹케 하는 것이 이 한 사람 속에 제시되어 있다(벧전 1:10-12).
중재적 왕국에 있어서 정부의 형태는 군주적이다. 이것 역시 의미상으로 볼 때 문자적이다. 성경은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다"라고 말한다(사 9:6). 인간 측면에서의 보좌에 대한 그의 권리는 그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추적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인 한편, 성경은 여전히 왕이 하나님의 인정하심으로 권위를 받고 소유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않을 것이요 그 나라는 패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4). 아버지는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6). 승천 시에 그리스도는 왕국을 받으시기 위하여 하늘로 돌아가셨고, 또 돌아오신다(눅 19:12). 정부의 모든 기능인 입법, 사법, 행정권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다(사 33:17-24). 이것은 그가 모든 기능을 친히 행사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종적인 권위가 그에게 주어진다는 것과 그가 그의 수행을 대리에게 맡기거나 직접 다스리실 것을 의미한다. 그의 통치는 완벽한 엄격과 온유함이 혼합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철장으로 국가들을 다스릴 것이다(시 2:7-9,12). 그리고 그의 팔에 양들을 모으실 것이며, 그는 그의 가슴에 안으시고 그들을 운반하실 것이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실 것이다(사 40:11).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4-5). 이렇게 온전한 가동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자질의 결과로써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시 9:7). 역시 이전 이후에 없을 문명의 황금시대가 이 지상에 도래할 것이다.
중재적 왕국의 외적 조직은 놀라운 현상이다. 어떠한 정치적 조직도 이와 같은 것이 일찍이 고안된 바 없다. 최정상의 위치에서 "왕은 의로 다스릴 것이다"(사 32:1).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슥 14:9). 영적 숭고함을 위해서 정부의 증배된 책임감이 위임될 것이다. 이 그룹은 부활한 성도들의 세 무리 즉 교회(고전 6:2; 계 3:21; 20:6), 구약의 성도(겔 37:24-25; 단 7:18,22,27), 그리고 대환난의 순교자들(계 20:4)에 의해서 구성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속받아 살아있는 국가 즉 중생 받고 본토에 소집된 자들은 지상의 모든 국가 위에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신 28:1,13; 사 41:8-16). 그 나라를 하나님의 두 장중에 새겨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잊을 수 없다(사 49:15-16). 그래서 그는 모든 이방인들의 국가들 위에 그들을 높이신다(사 60:1-3,12). 가장 낮은 위치에는 구원받고 살아있는 이방인 국가들이 있다. 그들은 왕들과 통치 군주들과 정부의 선한 조직에 속하는 모든 다른 휘하 부서들을 소유한 국가로서 조직되어진다. 이들은 마태복음 25장 34절의 양들이다.
앗수르와 이집트가 특별히 명명되었다(사 19:23-25). 그들은 같은 주를 예배할 것이며(미 4:2), 위대한 왕의 도시에 매년 순례할 것이다(슥 8:18-23; 14:16-19), 그리고 그들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암 9:12)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소유될 것이다.
진짜 왕국의 모든 측면은 중재적 왕국의 본질적 성격을 특징지을 것이다. 이 왕국이 구조 및 사회 운영상에서 우주적인 변화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 변화의 선풍적인 성격과 왕국의 부요와 위대함은 예언서에 나타난 여섯 가지 점에서 다음과 같이 고려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왕국은 그 성격상 영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다스려지거나 하나님의 영에 속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진짜 왕국으로써 손에 잡아볼 수 있는 물질적 자질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성령의 조종과 지시아래 존재한다. 용서, 하나님에 대한 직접지식(렘 31:34), 의(렘23:5-6), 영적 씻음(겔 36:24-26) 그리고 중생(겔 36:26-28)이 모두 현존할 것이다.
영적 조종의 열매는 윤리적 행위 속에서 표명될 것이다. 윤리적 가치의 조직은 이 기간동안 가동될 것이다(사 40:4). 율법의 객관적 표준은 척도의 법칙이 될 것이다(말 4:4). 이 율법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전 세계로 나갈 것이다(사 2:3). 그리고 모든 선악의 문제는 이 절대적인 표준의 본문배경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다(사 8:20). 개개인의 도덕적 가치는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평가가 주어질 것이다(사 32:5).악한행위에 대한 보복은 신속하고 오류 없고 피할 수 없을 것이다(사 11:3~4; 말 3:1~5).
이 왕국에는 완벽한 사회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전쟁은 국제문제해결의 방법으로써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사 2:4). 심지어 예술과 전쟁에 공헌했던 공업도 경제에서 제거될 것이다 이전에 전쟁에 사용된 물질, 금전, 시간도 건설적인 사업에로 돌아갈 것이다. 모든 적극적인 노력이 땅의 소산을 늘리고, 모든 사람에게 이용될 수 있는 인류천재를 만드는데 사용될 것이다(사 65:21~22).
저주가 대부분 향상되고 그 결과로 육체의 변형이 올 것이다. 지리적 변화(슥 14:3~4), 기후 변화(사 32:15~16; 35:7), 증가된 땅의 비옥(사 35:1~2; 암 9:13), 동물세계의 변화(사 11:6~9; 65:25), 육체질병의 치유(사 33:24; 35:5~6), 수명의 연장(사 65:20,22), 육체적 위험의 제거가 있을 것이다(사 65:23; 겔 34:23~31).
정치적 변화는 마찬가지로 이 왕국을 특징지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국가간의 문제를 중재하는 도시가 될 것이며, 중심적 권위는 절대적이며, 융통성 있는 것일 것이다(사 24:4; 미 4:3). 국가 안전은 모든 국가의 혜택이 될 것이며(사 32:18; 미 4:4), 이스라엘은 영원히 그의 나라로 회복될 것이며(암 9:14~15), 유대왕국의 재건과 통일을 이룰 것이며(겔 37), 그리고 국가 위에 뛰어난 나라가 될 것이다(사 60:10~14).
종교적 순화는 이 왕국의 통치가가 왕과 제사장의 양면을 가진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갈 때 보여질 것이다(시 110). 그는 모든 나라들에 의해서 예배의 유일한 대상이 될 것이다(사 66:23). 그리고 모든 나라는 이 특권 자체를 이용하려는 충동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슥 14:16~19). 중심성소는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에 세워질 것이다(겔 37:27~28). 그리고 쇠키나 영광은 성전의 바른 장소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겔 43:1~7).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이신 종교적 진리의 지도자나 선생들이 되는 것이 이 백성들 안에서 성취될 것이다(사 61:6).
이들 여섯 가지 왕국에 대한 요소들이 왕국의 위대함인 과감한 구제를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완전하고 만족스런 모든 합법적 관점들을 화목하는 관점이다. 그것의 크기는 놀라우리만큼 크다. 나라의 크기는 전 세계넓이이다(슥 14:9). 모든 나라는 이 왕국의 지배아래 놓인다(시 72:8~11).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모든 본질적 요소들이 현존한다(슥 14:20~21). 그것의 증대에 대해서는(오늘날의 왕국들이 갖는 최고의 문제점) 끝이없다(사 9:7). 그것의 수명은 영원하다. 첫 측면은 일천 년이다(계 20:4~6). 그 후에 그것은 영원한 상태와 합류할 것이며, 그리고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시 45:6; 단 7:13~14; 미 4:7; 고전 15:24~28; 계 22:1~5).
7.복음서에 나타난 왕국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한 복음서에 나타난 중재적 왕국은 하나의 신비이다. 무천년설 주창자는 사회적 정치적 요소들은 묵살한 채 영적인 요소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는 그것을 신약왕국이라고 부른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사회적 개선에 따른 기독교 사회질서를 세우려했다고 주장한다. 비평 학파들은 그리스도께서 구약 예언자들의 이상주의에 자신을 수용했다고 주장한다. 성경적 관점은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대로의 왕국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 왕국에 관한 많은 공식적 선포들이 복음서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것은 천사에 의해서 알려졌고(눅 1:30~33), 동방박사들에 의해서 기대되었으며(마 2:1~2), 세례 요한에 의해서 선포되었다(마 3:1~2). 그리고 그리스도와(마 4:17,23), 열두 사도와(마 10:5~7) 그리고 칠십인 제자들에(눅 10:11) 의해서 설교되었다. 어떤 표현들은 이 왕국의 임박한 도래에 관해서 묘사하였다. 그리스도는 그 권능의 근원으로써 정해진다(눅 11:20). 이것은 왕이 그들 사이에 서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설명되었다(눅 17:21). 왕국이 가까웠다. 왜냐하면 왕이 임재 하셨기 때문이다(막 1:15; 눅 10:9). "천국의 왕"으로써(천국은 천국에 살고있는 자를 대표한다), 또는 "하나님의 왕국"으로써(하나님은 통치자를 지정하신다. 막 1:15; 눅 10:9) 이 왕국을 말한 것은 아주 정확하였다 - 마태복음 4장 17절 그리고 마가복음 1장 15절을 보라. 두 가지 표현들은 서로 바꿔서 쓸 수 있는 것들이다(마 19:23~24).
조심스런 연구는 복음서의 왕국이 구약 예언의 중재적 왕국과 동일시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천국의 왕국"이란 명칭은 다니엘의 예언들에서 유래하였고(단 2:44; 7:13~14), 이 왕국의 지배자인 "인자"도 다니엘서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왜 그리스도가 항상 왕국에 관한 그의 메시지를 입증하기 위해서 구약 예언의 말씀들을 인용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눅 4:18~19; 사 61:1~62; 눅 7:27을 보라. 말 3:1; 눅 20:41~44를 보라. 시 110:1를 보라).
복음서는 구약 예언의 왕국과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왕국에 항상 연관을 짓고 있다 이 왕국의 보좌는 다윗에게 속한다(눅 1:30~33). 이 왕국의 통치자는 이사야에 의해서 선포된 분이시다(마 3:3; 사 40:3을 보라). 이 왕국의 빛은 그리스도이시며, 이사야가 선포한 빛이다(마 4:12~17; 사 9:1~2를 보라). 어떠한 점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왕국에 관한 그의 사상이 구약의 예언에서 나타난 왕국과 다르다는 점을 전혀 암시한 바 없다. 결국 그는 율법과 선지자를 성취키 위해서 오셨다(마 5:17~18). 문자적 성취는 지상에서의 그의 공생애를 통한 사건들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나셨고(눅 2:1~6; 미5:2~5을 보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다(마 2:1~5; 슥 9:9~10을 보라).
여러 가지 방법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아와 사역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왕국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보이셨다. 영적인 요소들은 왕국의 국민이 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요 3:3~5). 가장 높은 윤리적 수준은 들어내 강조되었다(마 5:19~21,27). 사회적 결과는 왕국의 심복들에 의해 열거될 것이다(마 13:41~43; 눅 6:20~21). 성전 청결은 종교적 정화를 나타낸다(막 11:15~17). 정치적 재건은 지적되었고(마 19:28; 25:31), 신체적 환경에 있어서도 신속한 변화가 얼어날 것이다(마 9:35; 10:5~8). 그리스도의 분명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왕과 왕국은 거절되었다. 왕국에 관한 최초의 선언당시 그리스도는 우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왕국의 계시는 참된 것이었으나, 역시 인위적인 우연성이 있었다(마 10:~7; 15:2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3~15; 17:10~13). 미리 그 결과를 아시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도래할 사건을 예언하셨다(요 2:19~22; 3:14~15). 그가 알고 계신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실히 아신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그의 공생애의 사역 초기부터 반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는 나사렛에서 거절 당하셨다(눅 4:28~29). 두 번째 유월절 때에는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요 5:18,43). 일반 대중으로부터의 인기도 시시각각 달랐다. 한 날은 그들이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다음 날에는 그들이 그를 버렸다(요 6:15,60~66). 적대감은 점차 커져서 결국 위협 수위에까지 이르렀다.
그리스도는 신성모독에 대한 책망을 받았고, 사단과 동행하고 있다는 오해도 받았다(마 9:3~6; 10~12;34). 안식일에 행하신 사역들로 인하여 사태는 악화되었다(마 12:2,14). 분명히 이스라엘 나라는 자신의 죄성을 확증하게 되었다(마 12:24~45). 결국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왕국의 거절에서 그리고 현재를 위한 왕국의 정지가 정점에 이르렀다(마 12:38~40). 왕을 거절함으로써 이스라엘 국가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우시려 던 왕국을 거절하였다. 그 자신과 그의 왕국을 거절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건을 위해 자기 자신의 사도들을 예비하려 하셨다. 비유의 시리즈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의 거절 시기를 통하여 왕국에 관한 "신비적인" 형태를 계획하셨다. 왕국의 미래의 실현을 기대하면서 씨 뿌림이 있을 것이다(마 13:3~9). 이것이 신비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막 4:26~30). 성장은 혼합될 것이다(마 13:24~30). 그리고 그것은 비범할 것이다(마 13:31~32). 교리적 과오는 성경적 전문성을 가지고 침투될 것이며, 전 지역으로 번질 것이다(마 13:33). 이스라엘의 이전 남은 자는 구속을 위한 밭에 남을 것이다(마 13:44). 그리고 진주의 진가인 교회도 밭에서 구속될 것이다(마 13:45~46). 마지막 때에 선악이 구분될 것이다(마 13:47~50).
이 때에 그리스도는 왕국의 거절기간 동안 그의 목적으로 성취시키시기 위해서 다른 방향으로 돌아 설 계획들을 나타내신다. 그는 교회 즉 믿는 자들의 새로운 사회를 세우려 하신다(마 16:13~20). 그는 또 그의 죽음과 부활의 필요성에 관하여 좀더 분명히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신다(마 16:21; 17:22~23; 20:17~22, 28; 21:33~42). 그러나 그는 또 그가 그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영광 가운데 다시 돌아오실 것을 그들에게 확언하셨다. 변화산에서 그는 왕국의 문자적 성격에 대해 미리 보여주셨다(마 16:27~17:8; 벧후 1:16~18). 그리고 그들이 이 왕국에서 함께 누릴 것을 그들에게 약속하셨다(마 19:27~28; 눅 22:28~30).
그리스도께서 전개될 일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준비하실 때, 지시해야할 어떠한 중요한 요소도 생략하지 않으셨다. 그는 왕국 설립이 연기될 것을 분명히 밝히셨다(눅 19:11~27).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를 아셨을지라도 왕으로서 그는 예언에 따라서 성의 있게 왕국을 제시하셨다(눅 19:29~4; 슥 9:9~10). 그리고 그는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서 돌아오시기 전에 발생할 사건의 진행을 설명하는 예언적 연설을 하셨다(눅 21:5~31). 그리고 배반의 밤을 맞으시고 재판을 받으셨다. 이 모든 일이 있을 동안 그는 결코 자신의 주장을 바꾸지 않았으며, 구약 예언의 중재적 왕국으로서 그들 주장들을 계속해서 권하셨다(마 26:63~66; 27:1; 막 14:61~62; 요 18:3~39).
왕과 왕국은 완벽하게 동일시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은 곧 왕국을 거절한 것을 의미하였다. 복음서는 거절에 대해서 여섯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영적 요구사항이 너무 높아 받아드려지지 않았다(마 5:20; 6:2,5,16). 성격상 단순히 사회적 정치적인 왕국을 세우려는 것에 대한 그리스도의 거절은 이어서 발생하였다(눅 12:13~14). 그리스도의 가차없는 거절은 유대인에게서 단순히 나온 외적, 의식적, 전통적 종교가 표적이었다(눅 1:37~41). 시민들의 비난과 절대진리의 심판대 앞에 선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력이 거절에 대한 짙은 이유를 구성한다(마 23; 눅 1:42~12:1).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들과의 놀라운 교제는 유대인들에게 용납될 수 없었다(눅 15:1~2). 저주에 대한 모든 다른 이유 이상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가 자신과 안식일에 행한 행동에 대하여 도도하게 설명해 나갔기 때문이었다(요 5:16~18).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은 완전히 이스라엘에 의해서 거절당하였다. 전 국가적인 거절은 유월절 때에 나타났다. 국민의 세 부류가 국가를 형성하는데, 통치자 또는 시 당국(13), 제사장들 또는 종교 지도자들(13), 그리고 백성 또는 국가의 시민(35)을 말한다. 백성들이 거의 끝까지 그리스도께 충성스러웠던 것으로 나타났으나(눅 19:48~20:8, 19~26; 21:37~22:2), 결국 제사장들의 간교로 돌아서고 말았다(막 15:8~15). 이것은 백성들이 기본적으로 그들의 지도력에 헌신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냈다. 그들은 종교문제에 관한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제사장들의 권리로 간주하였다. 그들의 영웅은 그들을 실망시켰고, 그들이 기대했던 사회적 물질적 혜택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요 6:14~16, 66). 그러므로 통치자, 제사장들 그리고 백성은 전체가 한 국가로 뭉쳐서 왕과 그의 왕국을 완전히 거절하였다.
8. 현 시대 속의 왕국
현 시대는 중재적 왕국을 위한 전환기로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왕국의 성립을 위한 계속된 기대감이 있었으나(행 1:6), 신자들은 십자가와 무덤으로 이 소망을 융합할 수 없었다(눅 24:13~27, 44~45). 그것들을 신비화한 것은 시간적인 요소였다(벧전 1:10~12). 어떠한 점에서 그리스도의 이전의 가르치심이 주님에 의해서 주어진 새로운 방향들에 의해 무가치해질 수 없다(행 1:8; 마 26:l6~20; 눅 24:47~49).
새로운 확신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좀더 확고히 하는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자들에게 주어졌다. 구약 예언에서 약속된 기사와 표적들이 초기교회 기간동안 계속됐다. 오순절날 성령을 물 붙듯 주셨고(행 2:1~4, 16~18), 병자들의 치유(행 3:1~10;19:11~12; 사 35:1~10을 보라), 신체적 이적(행 4:31; 8:39; 16:26; 엘 2:28~32을 보라), 죄인들의 심판(행 5:1~11; 12:23; 13:11; 겔 1:13을 보라), 기적적 환상(행 7:55; 9:3,10; 11:5; 엘 2:28~32을 보라), 그리고 직접적인 천사의 사역(요 1:51; 행 5:19; 10:3; 12:7; 히 1:6~7,14)이 있었다.
왕국에 대한 다른 제안들도 역시 이 전환기에 있었다. 오순절날 베드로는 설교를 통하여(행 2:14~41) 성령의 오심이 그리스도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행 23~36) 것을 증명하는 예언의 성취였다는(16~21)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 설교가 백성들을 크게 설득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돌아오도록 권장하였다. 이 설교에 삼천 명이 응하였다(37~41). 얼마 후 앉은뱅이의 치유로 다시 설교의 기회를 얻은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으로 백성들에게 맞섰고,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2).
복음서의 패턴을 따라서 왕과 그의 왕국에 관한 가르침에 유대인들 사이에 계속 커져 가는 반대가 있었다. 사두개인들은 그리스도와 기적을 부인하였다(행 4:1~4). 바리새인들은 새로운 분파에 대하여 그들의 태도가 나뉘었다(행 15:33~39). 유대인들 사이의 박해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설교하는 것에 반대하여 자행되었다(행 22:22~23; 23:10~12). 드디어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서 떠나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이르렀다(행 13:43~48; 18:5~6; 19:8~9; 17:31). 반대의 물결에 따라 왕국에 관한 메시지는 점차 시들해져 갔고, 교회에 관한 메시지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왕국의 영광과 왕국의 전망은 시들해지고, 모든 영광으로 교회는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왕국에 관한 메시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왕국을 위한 상류계급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왕국을 다스리고 지배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와 연관을 맺도록 되어있다(고전 4:8; 6:2; 히 12:28).
특이한 의미에서 볼 때, 중재적 왕국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때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정지 내지는 보류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구약 예언의 말씀이 기술한대로 충분하게 왕국이 경험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지상에서 통치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고전 4:8). 실제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나라에 임하옵시며"(마 6:10)하는 기도를 성도들이 드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왕국의 선포는 바울이 행한 대로 계속 설교되어야 한다(행 20:24~27). 그것은 하나님의 전체 계획의 일부이다. 제한된 의미에서 볼 때, 이 왕국에의 참여는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에 의해서 경험되어지고 있다. 회심과 중생을 통해서 성도들은 그 왕국에로 옮겨지고 있고(골 1:13), 그들은 이 왕국의 일원이 되어, 상류계급으로써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며, 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 지상에 완전히 세워지면, 통치하는 고귀한 백성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실제로 이 지상에 보이는 물질세계로 세워지기 전에 왕국에 들어간다(요 3:3,5).
왕국의 현재의 상태는 그래서 하나의 비밀 또는 신비로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기술된다(마 13:11). (이 점에 관해서는 이미 [7. 복음서에 나타난 왕국]에서 설명한 바 있다.) 마태복음 13장에 언급된 병행발전은 왕국을 예비키 위해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다. 성도들의 몇몇 동반자로 구성된 한 영적 핵심부의 준비과정이 있다. 이들은 "왕국의 아들"로써 알려져 있다(마 13:38). 오순절 성령강림의 때로부터 휴거 때까지 준비되는 교회가 있고, 대 환란 시기에 구원받는 순교자들이 있다(계 3:21; 20:4). 그러나 이 외에도, 대환란 시기에 이스라엘 민족 중에 구원받는 큰 무리가 있고, 원래 인구로서 왕국으로 들어갈 이방인의 무리도 있다(마 25:34). 악도 역시 현 시대에 악 자체의 선(線)을 따라 발달된다. "악인의 아들들"은 거대한 무리로 증대될 것이다(계 13:5,7). 이 마지막 세상 제국 위에 손으로 뜨지 않은 산에서 자른 돌이 파괴하는 위력으로 떨어져, 세상을 바수어 가루로 만들 것이다(반 2:34~35, 44~45). 이것이 시대의 마지막 추수이며(계 14:14~20), 돌아온 주 예수 그리스도와 천군 천사들에 의해서 수행될 추수이다(마 13:36~43, 47~50). 또한 우리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적 왕국을 재촉할 일련의 사건들이다(단 2:34~35, 44~45).
9. 왕국의 현실화
중재적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에 의해서 세워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칠 년 또는 약간 긴 기간동안에 지상에서 횡령자를 쫓아 낼 섭리적이고 즉각적인 재앙에 의해서 표시될 것이다. 이들 재앙들은 그의 손에 지상에 행할 일곱 인을 가지시고 천국에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행하여 질 것이다. 하나씩 봉인 아래 있는 재앙과, 나팔 및 대접 재앙들이 착착 진행될 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인을 치실 것이다(계 6~19). 그러면 대환란 직전에 교회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오신다(살전 4:13~17; 계 19:7~8,14).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서 그에게 위임된 권위를 행사하기 시작할 것이다(마 28:18; 계 11:15~17). 그리스도의 몸소 임재 하심은 이 왕국이 갖는 최상의 것이다. 온 세상을 채우며 증대하는 것은 반석이신 그리스도시다(단 2:34~35, 44~45). 그리스도께서는 영광가운데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오실 것이다(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Herman A. Hoyt)
http://kccs.pe.kr/thesis060.htm
이 글은 그레이스 신학대학원(Grace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수를 역임한 허만 A. 호이트(Herman A. Hoyt)가 [시대구분론적 전천년설]의 입장에서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 관한 "해석법의 문제"를 다룬 글이다.[Herman A. Hoyt,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The Meaning of the Millennium: Four Views(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77). Edited by Robert G. Clouse. pp. 63-92.]
어지러운 이 세상은 인류가 즐길 수 있는 성경에 기록된 천년왕국 즉 문명의 황금시대가 주는 혜택을 갈망한다. 이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 천국으로부터 신에 의한 초자연적인 대변동의 표시로써 등장할 것이다. 그것은 삶의 상태들이 대환란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에 지상에 세워질 것이다. 오늘날의 사건들의 움직임이 왕국의 성립이 멀지 않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모든 신학자들이 이 점에 동의한다고는 생각지 말자. 실제로 예언의 분야에 있어서 성경 연구가들의 견해의 차이를 우리는 피할 수 없다. 기독교 여러 분야에서 교회의 휴거, 대환란 그리고 영원한 상태에 관한 논제들에 대해 상당히 의견을 달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년왕국의 주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본인의 이 주제에 대한 접근은 시대구분론적 각도에서 본 전천년설로서 종종 특징지어진다. 본인은 예언의 말씀들에 있어서 이 주제의 순서적 및 점진적 전개로써 이 견해를 간주하고 싶다. 좀더 표현을 빌린다면, 천년왕국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성경의 넓은 주제에 대한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1. 성경이 선포한 왕국
신학자의 특별한 종말론적 설득에 관계없이 만약 그가 성경을 주해하는 데에 진지한 노력을 가한다면 성경이 하나님왕국의 교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왕국이란 말 자체만 성경에서 450회 이상 나타나고 있다. 이 중에 대략 200회 이상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왕국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르침은 왕국이란 말에만 국한할 수 없다. 이 왕국사상은 특별한 용어 이상이며, 성경 전체에 흐르는 사상이다. 요한 브라이트(John Brigh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사상은 참된 의미에서 성경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이다.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에서 크게 부각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장과 폭을 통하여 하나의 형태나 또 다른 형태 속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신구약성경은 하나의 드라마에 대한 두 막으로 볼 수 있다. 제1막은 제2막에서 드라마의 결론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이 없이는 연극은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제2막은 제1막에 비추어서 읽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막의 의미를 놓칠 것이다. 만약 책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면 우리는 아마 "하나님의 왕국 도래에 관한 책"이라고 당연히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배에 관한 문제는 성경의 창세기 제1장에서부터 소개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이 만들어진 직후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첫 명령은 만물을 지배하라는 것이었다(창 1:26,28). 이 주제가 최후에 하나님의 보좌가 지상에 성립될 때까지 그리고 구속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다스릴 때까지(계 22:5), 성경을 통하여 점진적인 경이 속에서 펼쳐진다(계 22:1,3).
다음에 이어지는 성구들은 성경을 통한 사상의 움직임을 지적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목적이 지상에 왕국을 세우는 것임을 지적한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제사장의 왕국으로 이스라엘을 조직하셨고(출 19:5-6), 모세는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었다(출 7:1; 행 7:35).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가 장래에 나타나기로 약속되었고,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기로 약속되었다(신 18:15-18; 행 3:19-23).
다윗은 이스라엘 위에 기름부음 받은 왕이며, 그의 왕국은 영원토록 계속되기로 되어 있었다(삼하 7:12-16). 그리고 이 왕국은 솔로몬을 통하여 영구화되었다(대상 28:5,7). 선지자 이사야는 한 왕의 도래를 선포하였고, 영원히 계속될 한 왕국에 대해서도 선포하였다(사 9:6-7). 후에 다니엘은 천상의 하나님께서 이 왕국을 세우실 것이며, 결코 멸망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였다(단 2:44). 인자와 같은 한 사람이 이 왕국의 보좌 위에 앉을 것이며, 모든 백성, 모든 나라, 모든 방언이 그를 섬길 것이다라고 하였다(단 7:13-14,27). 마리아에게 파송된 천사는 하나님께서 다윗 왕의 보좌를 그녀의 아들에게 주시겠다고 전하였다. 그리고 야곱의 집 위에서의 그분의 통치는 영원할 것이다라고 전하였다(눅 1:32-33). 부활후 예수의 40일 지상사역 기간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이 왕국에 관한 일들을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그들 마음 속에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행 1:3,6).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왕과 왕국의 도래를 기대하면서 살 것을 권하였다(딤후 4:1). 그리고 성경의 맨 마지막 책에서 일곱째 나팔이 소리를 낼 때,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왕국이 드디어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라고 선포되었다.
2. 성경해석의 원칙
성경의 말씀은 신구약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시된 것이었다. 모세는 이 점에 대해서 모압 평원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고별 연설에서 분명히 밝혔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여러 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나라에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다(마 23:27). 신약성경에도 반복해서 그것의 메시지가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주어졌다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눅 1:3-4; 요 20:30-31; 행 1:1; 롬 1:7; 빌 1:1).
이 메시지는 일정한 도덕적, 영적 특혜가 그들에 의해서 인식되어지도록 만드신 한 메시지와 한 방법을 구성하였다(딤후 3:15).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서 그들에게 가르쳤다(신 29:29; 딤후 3:1-17). 그것은 그들에게 위험에 대해서도 경고하는데 도움을 준다(고전 10:11). 그리고 이 모든 것 이상으로 그것은 그들에게 흑암 가운데서 이 세상의 공포 속에서 소망을 준다(롬 15:4).
이런 이유 때문에 메시지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그러면서도 분명한 방법으로 주어져야 했다(고전 2:1-5). 왜냐하면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을 성취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성경의 언어까지도 성경이 원래 주어진 백성들의 평범한 언어로 쓰여졌다. 구약은 백성들에게 친근한 히브리어로 쓰여졌고, 신약은 당대의 사람들이 공통어로 쓰고있던 헬라어로 쓰여졌다.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 하나님이 말씀을 이해하도록 한 방법이다. 선지자, 선생, 신학자 또는 교회 지도자들과 같은 특별한 인물들이 언어와 백성들 사이에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백성 어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성경은 싣고 있다는 것을 성경해석의 원리로 삼는 이유이다. 분명히 언급한 이 원칙이 성경의 문자적 및 평범한 의미가 성경을 읽는 해석가의 원칙이어야 하며, 신구약 모든 성경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역사적 내용이 문자적으로 받아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리적 내용도 역시 이런 방법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도덕적 영적 정보도 이와 같은 패턴에 따라야 한다. 예언의 말씀들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성경에 비유적인 언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언어가 적용된 곳에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문자적 방법의 적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전한 것이 아니고 부분적으로는 어떤 다른 방법의 해석도 원래 의도된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탈취하는 것이 되고 만다.
전천년설의 가르침에 대한 문자적 접근방식은 왕국의 시대구분론적 교리가 절대적인 기본이다. 이 교리에 찬성하는 이나 반대하는 이나 모두가 이 교리가 근본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발부르드(Valvoord)는 분명히 전천년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천년설은 구약의 해석에서 원칙적으로 발견된다. 만약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예언적 기대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그려준다. 그들은 확신하면서 도래할 구세주요, 구원자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신 메시아를 기대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의와 평강과 번영의 왕국으로 한 구속된 땅위에서 끌어들일 것을 기대하였다. . . . 전천년설의 해석은 수백 절의 예언의 증거들에 대한 오직 문자적 해석만을 제시한다.
이 해석방법의 정해진 적들도 전천년설의 교리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의 접근 방식의 중요성을 마찬가지로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알리스(Allis)는 "구약의 예언들을 만일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현시대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거나 간주될 수 없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플로이드 해밀톤(Floyd Hamilton) 역시도 같은 관점에서 전천년설을 반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구약예언의 문자적 해석이 전천년설 주창자들의 말대로 그리스도의 지상통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이 구약의 문자적 해석을 바탕으로 고대하던 그리스도의 왕국이 바로 이것이었다.
전천년설이 우세한 곳은 그것이 성경의 문자적 해석 위에 세워진 것일 뿐만 아니라 전체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신학의 모든 체계도 이 점을 바탕으로 나온다는 것이 주목될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무오성으로 출발하여 기독 교리의 모든 점을 고루 다룬다. 실제로 그것이 믿는 자로 하여금 전체로서의 성경과 적당한 관계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모든 측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통일된 원칙이다. 나를 반대하여 나도는 험담과는 달리 그것은 성경의 일부 본문 위에 세워진 주장도 아니요, 제멋대로 선정된 말씀 본문 위에 세워진 교리도 아니다. 그것은 성경을 포함하는 성경의 문제들과 직면한 성경 자체에만 그것을 국한한 그리고 비참하게 실패하고 공포에 사로잡힌 세계에 소망을 심어주는 신학의 한 체계이다.
무엇보다도 전천년설은, 모든 철학 위에 뛰어나고 탁월한 역사철학을 제시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모든 측면을 고려한다. 그것은 현세와 미래의 삶에 고려를 제시한다(딤전 34:8). 그것은 영과 육에 관하여 관심을 갖는다(고전 15:46). 그것은 지상과 천상의 처소를 인정한다(고전 15:48). 그것은 현재와 천상에서의 삶의 가치만큼이나 지상에서도 같은 수준의 삶에 가치를 제시한다. 그것은 역사의 중요성을 통찰하며(롬 15:4; 고전 10:11), 우리가 현세에 적용할 수 있는 것과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믿을 만한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제안한다.
전천년설은 하나님께서 점진적으로 역사를 통하여 움직이고 계시며, 사건의 진행을 좋은 결과에로 끌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주목시킨다. 죄로 인하여 인간성이 실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움직임은 점진적이며, 상승적이고, 하나님의 권능 아래서 장래에 대완성을 결국 이룰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였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병의 정복, 일부분이지만 전쟁의 억제, 생명의 연장, 사회적 정치적 폐단의 시정, 우주의 정복 그리고 토지 생산의 증대면에서 우리는 성공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의 본문 배경 속에서 이 지상 위에 모든 문명의 황금 시대가 도래할 그 날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철학이 의미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역사에 낙관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것은 삶의 모든 진실된 가치들이 보존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의 왕국에서 완전한 성취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인류의 노력과 모든 땀을 흘리도록 자극한다.
3. 왕국에 대한 해석
학자마다 다른 해석법을 가지고 왕국에 관한 주제에 접근을 시도하므로 다양한 해석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 관점에 관한 아홉 가지의 조사가 성경적 관점에 이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그리스도전에 이 왕국이 이스라엘에게만 국한하였다고 믿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사도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생각이 그들에게 이스라엘 왕국회복에 관한 질문을 예수께 던지게 하였던 것이다(행 1:6).
2)"하늘의 왕국"이란 문구를 일부 학자들은 천국에 있는 왕국으로 믿고 있으며, 하늘나라에서의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고 주장한다. 마태복음 19장 23-24절과 같은 성구는 지금 하늘나라에 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하며, 마태복음 25장 34절은 미래를 말한다고 한다.
3)성경말씀을 영해함으로써 교회는 왕국의 전체로써 이해되어 왔으며, 골로새서 1장 13절 같은 성구는 이 견해를 입증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천주교회는 보이는 교권주의적 교회를 왕국으로 해석하였고, 종교개혁가들은 보이지 않는 교회를 왕국으로 지적하였다.
4)일부 신학자들은 영해 원리에 상당히 지배를 받고 있어서 그들은 인간의 심령 속에서의 하나님의 지배를 왕국이라고 해석하였다. 중생이 새 삶의 출발점인 까닭에 누가복음 17장 20-21절은 이 견해를 증명하는데 인용되고 있다.
5)순수한 물질주의적 그리고 육체적 왕국의 해설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 학자들은 높은 도덕성이나 영적 목적으로 해석하였고, 그들의 평가 속에서 왕국에 관한 이 견해를 입증할 본문으로 로마서 14장 17절을 내놓고 있다.
6)최근 몇 년 동안 사회조직이나 인류사회의 전반적인 개선은 미래에 올 종말론적 왕국에 대항하여 현재의 왕국에 대한 환영받는 설명을 제시하였다. 전 교회연합운동은 이러한 형태의 논리로 제약된다.
7)일부 학자들은 과감히 성경 저자들과 심지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장엄한 현혹이라는 말로 비평하기를 마지않는다. 그들은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종말론적인 체계를 모두 배제한다.
8)바르트(Barth)와 브루너(Brunner)는 기독교인 일반에게 가장 환상적인 견해의 왕국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역사의 시공간적 사건들의 주기로부터 그것을 들어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속하는 영원한 영역에로 이 왕국을 옮겨 놓았다.
9)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그리스도의 재림당시 지상에 세워질 왕국에 대해서 말한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신앙이었다. 첫 250년간 주장된 견해이다. 어거스틴에 의해서 이 견해가 반박을 받고 그의 주장에 따라 신앙인들로부터 전천년설이 외면을 당하기까지는 이것이 성경적인 견해로 믿어져 왔다.
4. 왕국에 관한 성경적 해석
이상 언급한 견해들을 종합 검토해 볼 때, 왕국의 성경에 관한 학자간의 이론이 분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당한 부분의 의견의 격차는 틀림없이 좁고 편협적인 견해에서 싹튼다. 왕국의 연구 가운데서 한정된 관점은 이러한 상황을 불러일으킨다. 일부 학자들은 다니엘이 "왕국의 위대함"(단 7:27)에 관하여 예언으로 선포한 것이 무엇인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단일 원리에로 왕국에 관한 주제를 축소하려는 노력과 단순한 통일의 선호 때문에 그들은 무한한 다양성을 무시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고 또 만일 그 결과가 하나의 권위를 갖는 의미가 된다면, 성경의 구절인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어떠한 접근도 성경적 패턴의 해석으로 추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경 자료만의 연역법적 연구는 적극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왕국의 참된 개념은 한 구절의 본문 말씀에서 감히 찾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성경 자료들이 조사되어야 하고, 이 검토가 역사의 움직임과 성경신학의 방법을 추구하는 신의 계시인 점진성과 관련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고전인 {왕국의 위대한}(The Greatness of Kingdom)의 서술에서 맥클레인(McClain)은 왕국 개념에 대한 임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성경자료의 일반적인 조사는 "왕국"의 개념이 적어도 세 개의 필수적인 요소, 즉 첫째, 적절한 권위와 권능을 소유한 통치자, 둘째, 지배될 종속 영역, 그리고 셋째, 통치기능의 실제적 실행을 포함하는 전체 상황을 포함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상과 같은 설명은 상호간의 적절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세 요소 모두가 없이는 왕국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권위를 가진 지배자라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인 의미에서 볼 때, 영역과 통치를 빼고서는 어떠한 왕국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왕국에 관련해서 왕국은 그분의 피조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지배로서 폭넓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왕국에 관한 말씀들을 정독하면 몇몇 다분히 중요한 구별이 나타난다. 많은 말씀들은 왕국을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으로써 제시한다(시 10:16). 또한 다른 말씀들은 왕국이 하나의 분명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단 2:44). 몇몇 말씀들은 왕국을 범위에 있어서 우주적인 것으로써 묘사하고 있다(시 103:19). 그러나 또 다른 말씀들은 왕국을 지상 위에 선 하나의 지역적인 통치로써 정하고 있다(사 24:23). 어떤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것으로써 묘사되고 있고(시 59:13), 다른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중재자(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스리신다(시 2:4-6). 많은 본문들이 왕국을 전적으로 미래에 올 것으로 제시한다(슥 14:9).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왕국이 현실적인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시 29:10). 많은 곳에서 왕국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 위에 무조건적으로 통치하실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단 4:34-35).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이 통치가 인간과 맺으신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절충된 하나의 계약 위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시 89:27-29).
많은 학자들이 왕국에 관한 이들 문제점을 화합시켜보려고 시도했고, 일부 시도는 다음에 따르는 것에 하나나 또 그 이상의 것에 표함 된다. 첫째, 두 가지 측면을 가진 한 왕국이 있다. 둘째, 권능과 은혜의 왕국인 두 왕국이 있다. 셋째, 하나님의 통치는 한편 우주적 주권이며, 또 다른 한편 신정통치이다. 넷째, 하나님은 현재 왕이시나 그의 왕권은 여전히 미래에 있다. 다섯째, 현재적이고 승리적인 현실이 있으나 장래의 통치는 훨씬 승리적이다. 여섯째, 그리스도의 왕국이 있고, 하나님의 왕국이 있다. 일곱 번째, 하나님의 왕국이 있고, 천국의 왕국이 있다. 여덟 번째, 지상의 왕국이 있고 천상의 왕국이 있다.
가장 신뢰할 만한 설명은 두 왕국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 두 왕국이 서로가 전적으로 다르다는 거짓 주장은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들은 피조물 위에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한 통치의 두 측면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두 단어가 하나님의 통치의 이들 측면을 서술하는 최상의 단어로서 전천년설 주창자에게 그것을 요구한다. 첫째는 우주적이요, 하나님의 통치의 크기를 기술하는 것이다. 둘째는 중재적이요, 하나님의 통치의 방법을 기술하는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그것을 동일시하는 하나님의 통치의 질과 성격을 말한다.
중재적 왕국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비록 여기가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최상이지만, 우주적 왕국을 중재적 왕국에서 구분하는 일련의 차이점들을 나열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우주적 왕국은 영원하다(시 145:13).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옹위한다(대상 29:12). 통치는 거의 전적으로 섭리 즉 제 이의 원인에 의한다(출 14:21; 시 29:3; 사 10:5-15). 통치가 기적적인 사건과 같은 초자연적인 수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때도 있다(출 11:9; 신 4:34-35; 단 6:27). 우주적 왕국은 종속의 태도에 관계없이 작용한다(시 103:20; 단 4:25; 행 3:17-18; 요일 3:4,8). 우주적 왕국은 항상 영원한 아들에 의해서 항상 중재된다(골 1:17; 히 1:2). 우주적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가르친 왕국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마 6:16). 우주적 왕국은 항상 존재한다. 한편 중재적 왕국은 미래에 나타날 하나의 약속이다. 결국 하나님의 목적이 중재적 왕국에서 성취될 때, 그리고 모든 적이 결국 그 아들에게 복종하게될 때(고전 15:24-28), 그 때 중재적 왕국은 우주적 왕국에 나타날 것이며, 한 보좌만이 있을 것이다(계 22:2).
이 점까지 거론한 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정확히 말한 세 분야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기 위함이다. 첫째, 하나님의 우주적 왕국이 있다(시 103:19). 이 큰 왕국 안에 중재적 왕국으로 알려진 좀더 제한된 지역이 있다(단 2:44). 중재적 왕국 안에 또 우주적 왕국과 중재적 왕국의 일정한 특징들에 참여하는 훨씬 더 제한된 지역인 교회가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번역되어진 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주 지당하다(골 1:13). 중재적 왕국은 그리스도를 신랑 그리고 교회를 신부로서 보며, 교회가 이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교회의 구성원들에 속한다(히 12:28; 계 3:21).
5. 중재적 왕국의 묘사
여기서부터는 중재적 왕국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에 제한하여 거론할 것이다. 우리가 의미하는 하나님의 왕국은 피조물 위에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중재적 왕국이 영원하고 우주적 왕국의 인식에서 첫 장을 여는 만큼 중재적 왕국은 역시 우주적 왕국의 참된 것이 될 것이다.
이 왕국을 말함에 있어서 중재적이라는 말을 우리가 선택하였기 때문에 이 말은 특별한 개념에로 왕국이란 말을 제한하는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편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변하고 행동하며, 다른 한편, 하나님 쪽의 백성을 대표하는 신성하게 선택된 대표를 통하여 이 왕국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왕국은 지상에 사는 인류와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과 중재자가 항상 인류의 한 사람이란 점이 분명하다. 중재자란 말이 구약성경에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상당히 그와 비슷한 말이 있는데, 이들은 심판자 또는 중재자란 말이다(욥 9:33). 그러나 신약성경은 중재자를 의미하는 말이 있고, 여섯 번 성경에 나타난다(갈 3:19-20; 딤전 2:5; 히 8:6; 9:15; 12:24). 중재자의 기능은 세 가지가 있다. 그것들은 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다.
중재적 왕국에 관한 점진적 계시성으로 인하여 왕국의 수명이 계시록 이전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계시록 20장 1-7절에서 여섯 번씩이나 이 왕국이 천년간 계속 될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밀레니엄(millennium)이란 말은 헬라어 란 말의 번역에서 온 것이며, 천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중재적 왕국의 시작을 위한 준비는 창조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명령하시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신성한 기능을 행사하도록 하셨다(창 1:26-28). 이 지배권은 지상의 모든 것, 인류를 포함한 모든 것에 적용된다. 인간성은 이 기능을 행사하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하였다(롬 5:12,19; 딤전 2:14). 이 불순종이 혼돈과 무질서를 이 세상에 유입하였고(창 6:3),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당하는 불행을 초래하였다(창 6:3). 인간정부는 실패하였고(창 9:5-6), 사악한 세계정부를 방지키 위한 언어 혼란의 심판을 초래하였다(창 11:1-9).
이 지점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지를 성취키 위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셨다. 하나님은 족장들의 중재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지배하시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창 12:1-3), 아브라함을 통해서 절대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진짜 중재자들의 능력을 수행할 왕들이 나오도록 하셨다(창 14:14; 21:9-21; 22:1-9).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이삭과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 사무엘 그리고 중재적 조종의 책임을 진 왕들이 뒤따랐다.
좀더 형식인 의미에서 볼 때, 중재적 왕국은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시내산에서 또 광야생활 기간동안 모세 속에서 그것의 기원을 갖는다.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신 4:34)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통치자 모세를 통해서 통치하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의 하나님을 믿도록 하셨다.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출생"이 이루어졌다. 비록 모세를 왕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모세는 법적 기능을 행사하였다(행 7:35). 모세는 중재자로서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표하였고(출 4:16; 7:1), 또 하나님께 그의 백성을 대표하였다(신 9:24-39). 이와 같은 방법으로 모세는 장차 오실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셨다(신 18:15).
역사상에 나타난 이 중재적 왕국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는 사울, 다윗, 솔로몬의 통치기간이었다. 이 군주적 통치 형태는 예언 가운데 나타나 있으며(창 17:5-7; 35:9-11), 어떤 경고를 받고 있다(신 17:14-17). 사사 시대에는 백성들의 영적 타락으로 인하여 그들은 왕의 선택을 하나님께 요구하였다(삿 8:22-23; 삼상 8:1-9,19-20).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그들을 위해 왕을 선택하셨다(삼상 10:17-24; 12:1-25). 모세로부터 솔로몬까지 나타난 쇠키나 영광의 임재는 중재적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입증으로 받아 들여졌다(출 40:34; 대하 7:1; 느 9:19).
르호보암 시대이후로는 중재적 왕국의 기능이 점차 쇠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는 점차 간접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이 시점부터는 선지자들의 역할이 두드려졌다. 이것이 왕들의 역할 담당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이 쇠퇴가 점차 악화된 모든 시대에서 보여진다(삼상 8:7-20).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처방하였고(사 1:3-6), 다가오는 심판의 관점에서(암 5:18) 율법에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였다(사 8:20). 그러나 왕국계약의 불가침(렘 33:17-21)은 선지자들로 하여금 한 장래의 이상적 왕국을 약속하게 하였다(슥 14:7-9).
그러나 이스라엘의 변절과 타락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불만을 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떠나고 마셨다. 시내산에서부터 계속된 쇠키나 영광의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에스겔의 시대까지 일어난 발악적인 반역과 죄에로의 타락은 심각한 지점에까지 이르고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을 싫어하여 점차 떠나시는 하나님의 쇠키나 영광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다(겔 8:3-4; 9:3; 10:4,18; 11:23; 8:7-17). 백성들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 국가를 버렸다. 느브갓네살 왕에 의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파괴이후 성전이 두 번 다시 세워졌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임재하시지 않았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재적 왕국은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이 미래를 위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겔 11:16; 39:21; 43:1-7; 슥 14:1-4).
역사상에 나타난 중재적 왕국의 실패에 대한 설명은 세 가지 것에서 찾아져야 한다. 영적으로 대부분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고, 그의 율법을 지키지도 아니하였다. 지적으로는, 백성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왕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되었다(삼상 8:5,20). 거기에다 정치적으로 통치자들은 불완전함으로 가득 찼다.
장래에 대한 약속은 이러한 약점들에 대한 구제책이다. 백성의 거의 대다수가 중생을 체험할 것이다(겔 11:17-20).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화합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킬 것이다(시 110:1-3). 불완전한 왕들은 완전하신 중재자요, 왕이요,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대치될 것이다(사 42:1-4). 이 예수는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할 것이며, 세상의 헛된 감각론에서 멀리 하시며, 그의 종속들에게서 구속 사역을 면제시키시며, 완벽한 성공으로 그의 프로그램을 수행하실 것이다.
600 B.C. 이후 옛 이스라엘의 영화를 되찾고자 많은 노력들이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현재의 이스라엘 나라도 중재왕국의 초기 시기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앞에 놓인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표시는 될는지 모른다. 최종적이고 영구한 이스라엘 나라는 중재적 왕국으로 묶여 나눌 수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기다린다. 중재적 왕국은 회복 될 것이다(행 1:6). 그리고 예언은 장래에 어떤 사건이 있을 것을 선포한다(호 3:4-5).
6. 예언 속의 왕국
실질적인 역사적 상황은 중재적 왕국에 관한 예언을 위한 시기를 조성한다. 가까운 장래에 있을 사건이나 인물로 시작해서 예언자는 이스라엘과 중재적 왕국의 더 먼 장래에 있을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까지 예언을 한다. 가까운 장래에 있을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 때, 그것은 신실하고 신성한 멀고 최종적인 사건의 예시가 되었다(사 13:17-14:4; 14:5-6을 보라).
구약의 예언은 모세오경에 흩어져 있는 몇몇 다소 불투명한 성구들로 시작된다. 대부분 이것은 중재적 왕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여인의 씨(창 3:15), 셈의 장막에 거할 것이며(창 9:27), 아브라함의 자손이며(창 12:1-4), 유다의 후손인 율법을 주시는 자이시며(창 49:10), 야곱의 후손인 한 별이며(민 24:17),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이실 것이다(신 18:15). 역사적 왕국기간 동안에는 왕국에 관한 예언이 배로 늘어났다(삼후 7:1-16; 대상 17:1-14). 다윗 왕은 그의 집과 왕국과 보좌가 영원토록 보존될 것이라고 약속 받았다(대상 17:1-4; 삼후 7:14). 이것은 그의 씨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의 완전한 성취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눅 1:31-33). 솔로몬도 다윗과 같은 약속을 받았다(대상 22:6-10). 이스라엘이 쇠퇴하여 갈 때, 구약 예언은 증가되어 갔고, 모든 대소 선지서에서 이들 예언이 발견되고 있다. 이 분야의 예언 속에는 도래할 왕국에 대한 분명한 진술이 담겨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문자적인 왕국일 것이다. 이 왕국은 인간이 추구하나 결코 획득할 수 없는 하나의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왕국과도 같은 것이며, 역사상에 나타난 이스라엘 왕국과 같은 것이다. 이 왕국의 중심 장소는 실질적인 장소인 예루살렘과 그 주변이 될 것이다(욥 12-21). 진짜 왕이 물질적 왕좌에 실제로 앉을 것이다(사 33:17). 인류의 국가들이 왕국의 전투와 구원의 사역에 동참할 것이다(사 52:10). 이 세상의 사악한 왕국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갑작스런 대 재난의 종말을 맞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들을 지배할 것이다(단 2:31-45). 이 왕국은 역사상에 나타난 다윗 왕국의 부활이며 계속이다(암 9:11; 행 15:16-18을 보라). 신실하고 중생받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회복될 것이며, 이 왕국의 중심체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은 성취될 것이다(미 4:7-8; 렘 33:15-22; 시 89:3-4,34-37). 예루살렘은 위대한 왕의 수도가 될 것이며, 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전 세계를 통치하실 것이다(사 2:3; 24:23).
중재왕국의 현시(顯示) 역시도 문자적이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부분적으로는 점진적인 사건의 계시와 같은 것이다. 어떤 선지자들은 그것을 가까운 장래에 있을 일로 보았고, "잠시 후"(학 2:6-9) 또는 "미구(未久)에"(사 29:17-20)와 같은 어구를 사용하였다. 다른 때에는 선지자들이 먼 장래에 있을 일로 말하였고, "마지막 때"(사 2:2)라는 어구를 사용하였다. 호세아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스라엘이 많은 날들을 지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한다(호 3:4-5). 궁극적으로 이들 시기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벧후 3:8-10). 그러나 왕국이 세어지기에 앞서 일련의 전 세계적인 심판 즉 해, 달, 별, 지진, 홍수, 화재, 기근, 염병 그리고 모든 인류의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온갖 천재지변의 재앙들이 먼저 있을 것이다(사 24; 요엘 2:30; 3:9-15).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현시(顯示)와 그의 영광을 위한 전주곡이다(사 35:4; 40:5, 9-10). 이 모든 것은 왕국설립이 오랜 시간을 가지고 과정을 거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대변동을 통한 초자연적인 역사가 감각 경험의 분야에서 일어날 것이며,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서 인간역사의 진행을 방해하며, 자연 질서 속에 무엇인가 신(神)적인 것을 소개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사 40:5; 겔 20:33-38; 단 2:34,44; 요엘 3:1-2; 암 9:9-10; 말 3:1-6; 마 25:31-46).
도래할 왕국의 중심 어휘는 문자적으로 신인(神人)이신 왕이다. 어떠한 양(量)의 글로도 정당하게 평할 수 없는 영광이 그의 주변에 몰릴 것이다. 그의 이름과 명칭이 그가 신이며 인간이란 사실을 완벽하게 입증할 것이다. 그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사 11:1) 사람으로(사 32:1-2), 인자(단 7:13)로 정해졌다. 다른 한편 그는 "주로"(시 2:7), "너희의 하나님"으로(사 40:9-10),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사 9:6) 지정되었다. 성공적인 통치를 위한 모든 필요한 조건이 그에게 주어졌고, 일곱배의 권능(사 11:2), 절차상 완전한 권능의 행사(사 11:3-4) 그리고 의와 충실성 같은 성격의 완벽성(사 11:5)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한 신비성이 있다. 그의 경력의과정에 있어서 그는 잘리어버린다(단 9:29). 예언자는 이 종에 관한 슬픔, 고난의 복종, 만족(사 52:13-53-12)과 같은 신비스런 무엇인가를 인정하고 있다. 고난과 영광은 예언자들을 당황하게 하였고, 사람들을 낭패스럽게 하며, 사도들을 의혹케 하는 것이 이 한 사람 속에 제시되어 있다(벧전 1:10-12).
중재적 왕국에 있어서 정부의 형태는 군주적이다. 이것 역시 의미상으로 볼 때 문자적이다. 성경은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다"라고 말한다(사 9:6). 인간 측면에서의 보좌에 대한 그의 권리는 그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추적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인 한편, 성경은 여전히 왕이 하나님의 인정하심으로 권위를 받고 소유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않을 것이요 그 나라는 패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4). 아버지는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6). 승천 시에 그리스도는 왕국을 받으시기 위하여 하늘로 돌아가셨고, 또 돌아오신다(눅 19:12). 정부의 모든 기능인 입법, 사법, 행정권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다(사 33:17-24). 이것은 그가 모든 기능을 친히 행사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종적인 권위가 그에게 주어진다는 것과 그가 그의 수행을 대리에게 맡기거나 직접 다스리실 것을 의미한다. 그의 통치는 완벽한 엄격과 온유함이 혼합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철장으로 국가들을 다스릴 것이다(시 2:7-9,12). 그리고 그의 팔에 양들을 모으실 것이며, 그는 그의 가슴에 안으시고 그들을 운반하실 것이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실 것이다(사 40:11).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4-5). 이렇게 온전한 가동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자질의 결과로써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시 9:7). 역시 이전 이후에 없을 문명의 황금시대가 이 지상에 도래할 것이다.
중재적 왕국의 외적 조직은 놀라운 현상이다. 어떠한 정치적 조직도 이와 같은 것이 일찍이 고안된 바 없다. 최정상의 위치에서 "왕은 의로 다스릴 것이다"(사 32:1).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슥 14:9). 영적 숭고함을 위해서 정부의 증배된 책임감이 위임될 것이다. 이 그룹은 부활한 성도들의 세 무리 즉 교회(고전 6:2; 계 3:21; 20:6), 구약의 성도(겔 37:24-25; 단 7:18,22,27), 그리고 대환난의 순교자들(계 20:4)에 의해서 구성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속받아 살아있는 국가 즉 중생 받고 본토에 소집된 자들은 지상의 모든 국가 위에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신 28:1,13; 사 41:8-16). 그 나라를 하나님의 두 장중에 새겨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잊을 수 없다(사 49:15-16). 그래서 그는 모든 이방인들의 국가들 위에 그들을 높이신다(사 60:1-3,12). 가장 낮은 위치에는 구원받고 살아있는 이방인 국가들이 있다. 그들은 왕들과 통치 군주들과 정부의 선한 조직에 속하는 모든 다른 휘하 부서들을 소유한 국가로서 조직되어진다. 이들은 마태복음 25장 34절의 양들이다.
앗수르와 이집트가 특별히 명명되었다(사 19:23-25). 그들은 같은 주를 예배할 것이며(미 4:2), 위대한 왕의 도시에 매년 순례할 것이다(슥 8:18-23; 14:16-19), 그리고 그들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암 9:12)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소유될 것이다.
진짜 왕국의 모든 측면은 중재적 왕국의 본질적 성격을 특징지을 것이다. 이 왕국이 구조 및 사회 운영상에서 우주적인 변화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 변화의 선풍적인 성격과 왕국의 부요와 위대함은 예언서에 나타난 여섯 가지 점에서 다음과 같이 고려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왕국은 그 성격상 영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다스려지거나 하나님의 영에 속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진짜 왕국으로써 손에 잡아볼 수 있는 물질적 자질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성령의 조종과 지시아래 존재한다. 용서, 하나님에 대한 직접지식(렘 31:34), 의(렘23:5-6), 영적 씻음(겔 36:24-26) 그리고 중생(겔 36:26-28)이 모두 현존할 것이다.
영적 조종의 열매는 윤리적 행위 속에서 표명될 것이다. 윤리적 가치의 조직은 이 기간동안 가동될 것이다(사 40:4). 율법의 객관적 표준은 척도의 법칙이 될 것이다(말 4:4). 이 율법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전 세계로 나갈 것이다(사 2:3). 그리고 모든 선악의 문제는 이 절대적인 표준의 본문배경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다(사 8:20). 개개인의 도덕적 가치는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평가가 주어질 것이다(사 32:5).악한행위에 대한 보복은 신속하고 오류 없고 피할 수 없을 것이다(사 11:3~4; 말 3:1~5).
이 왕국에는 완벽한 사회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전쟁은 국제문제해결의 방법으로써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사 2:4). 심지어 예술과 전쟁에 공헌했던 공업도 경제에서 제거될 것이다 이전에 전쟁에 사용된 물질, 금전, 시간도 건설적인 사업에로 돌아갈 것이다. 모든 적극적인 노력이 땅의 소산을 늘리고, 모든 사람에게 이용될 수 있는 인류천재를 만드는데 사용될 것이다(사 65:21~22).
저주가 대부분 향상되고 그 결과로 육체의 변형이 올 것이다. 지리적 변화(슥 14:3~4), 기후 변화(사 32:15~16; 35:7), 증가된 땅의 비옥(사 35:1~2; 암 9:13), 동물세계의 변화(사 11:6~9; 65:25), 육체질병의 치유(사 33:24; 35:5~6), 수명의 연장(사 65:20,22), 육체적 위험의 제거가 있을 것이다(사 65:23; 겔 34:23~31).
정치적 변화는 마찬가지로 이 왕국을 특징지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국가간의 문제를 중재하는 도시가 될 것이며, 중심적 권위는 절대적이며, 융통성 있는 것일 것이다(사 24:4; 미 4:3). 국가 안전은 모든 국가의 혜택이 될 것이며(사 32:18; 미 4:4), 이스라엘은 영원히 그의 나라로 회복될 것이며(암 9:14~15), 유대왕국의 재건과 통일을 이룰 것이며(겔 37), 그리고 국가 위에 뛰어난 나라가 될 것이다(사 60:10~14).
종교적 순화는 이 왕국의 통치가가 왕과 제사장의 양면을 가진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갈 때 보여질 것이다(시 110). 그는 모든 나라들에 의해서 예배의 유일한 대상이 될 것이다(사 66:23). 그리고 모든 나라는 이 특권 자체를 이용하려는 충동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슥 14:16~19). 중심성소는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에 세워질 것이다(겔 37:27~28). 그리고 쇠키나 영광은 성전의 바른 장소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겔 43:1~7).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이신 종교적 진리의 지도자나 선생들이 되는 것이 이 백성들 안에서 성취될 것이다(사 61:6).
이들 여섯 가지 왕국에 대한 요소들이 왕국의 위대함인 과감한 구제를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완전하고 만족스런 모든 합법적 관점들을 화목하는 관점이다. 그것의 크기는 놀라우리만큼 크다. 나라의 크기는 전 세계넓이이다(슥 14:9). 모든 나라는 이 왕국의 지배아래 놓인다(시 72:8~11).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모든 본질적 요소들이 현존한다(슥 14:20~21). 그것의 증대에 대해서는(오늘날의 왕국들이 갖는 최고의 문제점) 끝이없다(사 9:7). 그것의 수명은 영원하다. 첫 측면은 일천 년이다(계 20:4~6). 그 후에 그것은 영원한 상태와 합류할 것이며, 그리고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시 45:6; 단 7:13~14; 미 4:7; 고전 15:24~28; 계 22:1~5).
7.복음서에 나타난 왕국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한 복음서에 나타난 중재적 왕국은 하나의 신비이다. 무천년설 주창자는 사회적 정치적 요소들은 묵살한 채 영적인 요소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는 그것을 신약왕국이라고 부른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사회적 개선에 따른 기독교 사회질서를 세우려했다고 주장한다. 비평 학파들은 그리스도께서 구약 예언자들의 이상주의에 자신을 수용했다고 주장한다. 성경적 관점은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대로의 왕국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 왕국에 관한 많은 공식적 선포들이 복음서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것은 천사에 의해서 알려졌고(눅 1:30~33), 동방박사들에 의해서 기대되었으며(마 2:1~2), 세례 요한에 의해서 선포되었다(마 3:1~2). 그리고 그리스도와(마 4:17,23), 열두 사도와(마 10:5~7) 그리고 칠십인 제자들에(눅 10:11) 의해서 설교되었다. 어떤 표현들은 이 왕국의 임박한 도래에 관해서 묘사하였다. 그리스도는 그 권능의 근원으로써 정해진다(눅 11:20). 이것은 왕이 그들 사이에 서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설명되었다(눅 17:21). 왕국이 가까웠다. 왜냐하면 왕이 임재 하셨기 때문이다(막 1:15; 눅 10:9). "천국의 왕"으로써(천국은 천국에 살고있는 자를 대표한다), 또는 "하나님의 왕국"으로써(하나님은 통치자를 지정하신다. 막 1:15; 눅 10:9) 이 왕국을 말한 것은 아주 정확하였다 - 마태복음 4장 17절 그리고 마가복음 1장 15절을 보라. 두 가지 표현들은 서로 바꿔서 쓸 수 있는 것들이다(마 19:23~24).
조심스런 연구는 복음서의 왕국이 구약 예언의 중재적 왕국과 동일시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천국의 왕국"이란 명칭은 다니엘의 예언들에서 유래하였고(단 2:44; 7:13~14), 이 왕국의 지배자인 "인자"도 다니엘서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왜 그리스도가 항상 왕국에 관한 그의 메시지를 입증하기 위해서 구약 예언의 말씀들을 인용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눅 4:18~19; 사 61:1~62; 눅 7:27을 보라. 말 3:1; 눅 20:41~44를 보라. 시 110:1를 보라).
복음서는 구약 예언의 왕국과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왕국에 항상 연관을 짓고 있다 이 왕국의 보좌는 다윗에게 속한다(눅 1:30~33). 이 왕국의 통치자는 이사야에 의해서 선포된 분이시다(마 3:3; 사 40:3을 보라). 이 왕국의 빛은 그리스도이시며, 이사야가 선포한 빛이다(마 4:12~17; 사 9:1~2를 보라). 어떠한 점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왕국에 관한 그의 사상이 구약의 예언에서 나타난 왕국과 다르다는 점을 전혀 암시한 바 없다. 결국 그는 율법과 선지자를 성취키 위해서 오셨다(마 5:17~18). 문자적 성취는 지상에서의 그의 공생애를 통한 사건들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나셨고(눅 2:1~6; 미5:2~5을 보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다(마 2:1~5; 슥 9:9~10을 보라).
여러 가지 방법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아와 사역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왕국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보이셨다. 영적인 요소들은 왕국의 국민이 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요 3:3~5). 가장 높은 윤리적 수준은 들어내 강조되었다(마 5:19~21,27). 사회적 결과는 왕국의 심복들에 의해 열거될 것이다(마 13:41~43; 눅 6:20~21). 성전 청결은 종교적 정화를 나타낸다(막 11:15~17). 정치적 재건은 지적되었고(마 19:28; 25:31), 신체적 환경에 있어서도 신속한 변화가 얼어날 것이다(마 9:35; 10:5~8). 그리스도의 분명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왕과 왕국은 거절되었다. 왕국에 관한 최초의 선언당시 그리스도는 우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왕국의 계시는 참된 것이었으나, 역시 인위적인 우연성이 있었다(마 10:~7; 15:2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3~15; 17:10~13). 미리 그 결과를 아시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도래할 사건을 예언하셨다(요 2:19~22; 3:14~15). 그가 알고 계신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실히 아신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그의 공생애의 사역 초기부터 반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는 나사렛에서 거절 당하셨다(눅 4:28~29). 두 번째 유월절 때에는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요 5:18,43). 일반 대중으로부터의 인기도 시시각각 달랐다. 한 날은 그들이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다음 날에는 그들이 그를 버렸다(요 6:15,60~66). 적대감은 점차 커져서 결국 위협 수위에까지 이르렀다.
그리스도는 신성모독에 대한 책망을 받았고, 사단과 동행하고 있다는 오해도 받았다(마 9:3~6; 10~12;34). 안식일에 행하신 사역들로 인하여 사태는 악화되었다(마 12:2,14). 분명히 이스라엘 나라는 자신의 죄성을 확증하게 되었다(마 12:24~45). 결국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왕국의 거절에서 그리고 현재를 위한 왕국의 정지가 정점에 이르렀다(마 12:38~40). 왕을 거절함으로써 이스라엘 국가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우시려 던 왕국을 거절하였다. 그 자신과 그의 왕국을 거절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건을 위해 자기 자신의 사도들을 예비하려 하셨다. 비유의 시리즈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의 거절 시기를 통하여 왕국에 관한 "신비적인" 형태를 계획하셨다. 왕국의 미래의 실현을 기대하면서 씨 뿌림이 있을 것이다(마 13:3~9). 이것이 신비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막 4:26~30). 성장은 혼합될 것이다(마 13:24~30). 그리고 그것은 비범할 것이다(마 13:31~32). 교리적 과오는 성경적 전문성을 가지고 침투될 것이며, 전 지역으로 번질 것이다(마 13:33). 이스라엘의 이전 남은 자는 구속을 위한 밭에 남을 것이다(마 13:44). 그리고 진주의 진가인 교회도 밭에서 구속될 것이다(마 13:45~46). 마지막 때에 선악이 구분될 것이다(마 13:47~50).
이 때에 그리스도는 왕국의 거절기간 동안 그의 목적으로 성취시키시기 위해서 다른 방향으로 돌아 설 계획들을 나타내신다. 그는 교회 즉 믿는 자들의 새로운 사회를 세우려 하신다(마 16:13~20). 그는 또 그의 죽음과 부활의 필요성에 관하여 좀더 분명히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신다(마 16:21; 17:22~23; 20:17~22, 28; 21:33~42). 그러나 그는 또 그가 그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영광 가운데 다시 돌아오실 것을 그들에게 확언하셨다. 변화산에서 그는 왕국의 문자적 성격에 대해 미리 보여주셨다(마 16:27~17:8; 벧후 1:16~18). 그리고 그들이 이 왕국에서 함께 누릴 것을 그들에게 약속하셨다(마 19:27~28; 눅 22:28~30).
그리스도께서 전개될 일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준비하실 때, 지시해야할 어떠한 중요한 요소도 생략하지 않으셨다. 그는 왕국 설립이 연기될 것을 분명히 밝히셨다(눅 19:11~27).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를 아셨을지라도 왕으로서 그는 예언에 따라서 성의 있게 왕국을 제시하셨다(눅 19:29~4; 슥 9:9~10). 그리고 그는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서 돌아오시기 전에 발생할 사건의 진행을 설명하는 예언적 연설을 하셨다(눅 21:5~31). 그리고 배반의 밤을 맞으시고 재판을 받으셨다. 이 모든 일이 있을 동안 그는 결코 자신의 주장을 바꾸지 않았으며, 구약 예언의 중재적 왕국으로서 그들 주장들을 계속해서 권하셨다(마 26:63~66; 27:1; 막 14:61~62; 요 18:3~39).
왕과 왕국은 완벽하게 동일시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은 곧 왕국을 거절한 것을 의미하였다. 복음서는 거절에 대해서 여섯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영적 요구사항이 너무 높아 받아드려지지 않았다(마 5:20; 6:2,5,16). 성격상 단순히 사회적 정치적인 왕국을 세우려는 것에 대한 그리스도의 거절은 이어서 발생하였다(눅 12:13~14). 그리스도의 가차없는 거절은 유대인에게서 단순히 나온 외적, 의식적, 전통적 종교가 표적이었다(눅 1:37~41). 시민들의 비난과 절대진리의 심판대 앞에 선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력이 거절에 대한 짙은 이유를 구성한다(마 23; 눅 1:42~12:1).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들과의 놀라운 교제는 유대인들에게 용납될 수 없었다(눅 15:1~2). 저주에 대한 모든 다른 이유 이상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가 자신과 안식일에 행한 행동에 대하여 도도하게 설명해 나갔기 때문이었다(요 5:16~18).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은 완전히 이스라엘에 의해서 거절당하였다. 전 국가적인 거절은 유월절 때에 나타났다. 국민의 세 부류가 국가를 형성하는데, 통치자 또는 시 당국(13), 제사장들 또는 종교 지도자들(13), 그리고 백성 또는 국가의 시민(35)을 말한다. 백성들이 거의 끝까지 그리스도께 충성스러웠던 것으로 나타났으나(눅 19:48~20:8, 19~26; 21:37~22:2), 결국 제사장들의 간교로 돌아서고 말았다(막 15:8~15). 이것은 백성들이 기본적으로 그들의 지도력에 헌신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냈다. 그들은 종교문제에 관한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제사장들의 권리로 간주하였다. 그들의 영웅은 그들을 실망시켰고, 그들이 기대했던 사회적 물질적 혜택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요 6:14~16, 66). 그러므로 통치자, 제사장들 그리고 백성은 전체가 한 국가로 뭉쳐서 왕과 그의 왕국을 완전히 거절하였다.
8. 현 시대 속의 왕국
현 시대는 중재적 왕국을 위한 전환기로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왕국의 성립을 위한 계속된 기대감이 있었으나(행 1:6), 신자들은 십자가와 무덤으로 이 소망을 융합할 수 없었다(눅 24:13~27, 44~45). 그것들을 신비화한 것은 시간적인 요소였다(벧전 1:10~12). 어떠한 점에서 그리스도의 이전의 가르치심이 주님에 의해서 주어진 새로운 방향들에 의해 무가치해질 수 없다(행 1:8; 마 26:l6~20; 눅 24:47~49).
새로운 확신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좀더 확고히 하는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자들에게 주어졌다. 구약 예언에서 약속된 기사와 표적들이 초기교회 기간동안 계속됐다. 오순절날 성령을 물 붙듯 주셨고(행 2:1~4, 16~18), 병자들의 치유(행 3:1~10;19:11~12; 사 35:1~10을 보라), 신체적 이적(행 4:31; 8:39; 16:26; 엘 2:28~32을 보라), 죄인들의 심판(행 5:1~11; 12:23; 13:11; 겔 1:13을 보라), 기적적 환상(행 7:55; 9:3,10; 11:5; 엘 2:28~32을 보라), 그리고 직접적인 천사의 사역(요 1:51; 행 5:19; 10:3; 12:7; 히 1:6~7,14)이 있었다.
왕국에 대한 다른 제안들도 역시 이 전환기에 있었다. 오순절날 베드로는 설교를 통하여(행 2:14~41) 성령의 오심이 그리스도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행 23~36) 것을 증명하는 예언의 성취였다는(16~21)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 설교가 백성들을 크게 설득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돌아오도록 권장하였다. 이 설교에 삼천 명이 응하였다(37~41). 얼마 후 앉은뱅이의 치유로 다시 설교의 기회를 얻은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으로 백성들에게 맞섰고,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2).
복음서의 패턴을 따라서 왕과 그의 왕국에 관한 가르침에 유대인들 사이에 계속 커져 가는 반대가 있었다. 사두개인들은 그리스도와 기적을 부인하였다(행 4:1~4). 바리새인들은 새로운 분파에 대하여 그들의 태도가 나뉘었다(행 15:33~39). 유대인들 사이의 박해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설교하는 것에 반대하여 자행되었다(행 22:22~23; 23:10~12). 드디어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서 떠나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이르렀다(행 13:43~48; 18:5~6; 19:8~9; 17:31). 반대의 물결에 따라 왕국에 관한 메시지는 점차 시들해져 갔고, 교회에 관한 메시지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왕국의 영광과 왕국의 전망은 시들해지고, 모든 영광으로 교회는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왕국에 관한 메시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왕국을 위한 상류계급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왕국을 다스리고 지배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와 연관을 맺도록 되어있다(고전 4:8; 6:2; 히 12:28).
특이한 의미에서 볼 때, 중재적 왕국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때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정지 내지는 보류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구약 예언의 말씀이 기술한대로 충분하게 왕국이 경험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지상에서 통치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고전 4:8). 실제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나라에 임하옵시며"(마 6:10)하는 기도를 성도들이 드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왕국의 선포는 바울이 행한 대로 계속 설교되어야 한다(행 20:24~27). 그것은 하나님의 전체 계획의 일부이다. 제한된 의미에서 볼 때, 이 왕국에의 참여는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에 의해서 경험되어지고 있다. 회심과 중생을 통해서 성도들은 그 왕국에로 옮겨지고 있고(골 1:13), 그들은 이 왕국의 일원이 되어, 상류계급으로써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며, 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 지상에 완전히 세워지면, 통치하는 고귀한 백성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실제로 이 지상에 보이는 물질세계로 세워지기 전에 왕국에 들어간다(요 3:3,5).
왕국의 현재의 상태는 그래서 하나의 비밀 또는 신비로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기술된다(마 13:11). (이 점에 관해서는 이미 [7. 복음서에 나타난 왕국]에서 설명한 바 있다.) 마태복음 13장에 언급된 병행발전은 왕국을 예비키 위해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다. 성도들의 몇몇 동반자로 구성된 한 영적 핵심부의 준비과정이 있다. 이들은 "왕국의 아들"로써 알려져 있다(마 13:38). 오순절 성령강림의 때로부터 휴거 때까지 준비되는 교회가 있고, 대 환란 시기에 구원받는 순교자들이 있다(계 3:21; 20:4). 그러나 이 외에도, 대환란 시기에 이스라엘 민족 중에 구원받는 큰 무리가 있고, 원래 인구로서 왕국으로 들어갈 이방인의 무리도 있다(마 25:34). 악도 역시 현 시대에 악 자체의 선(線)을 따라 발달된다. "악인의 아들들"은 거대한 무리로 증대될 것이다(계 13:5,7). 이 마지막 세상 제국 위에 손으로 뜨지 않은 산에서 자른 돌이 파괴하는 위력으로 떨어져, 세상을 바수어 가루로 만들 것이다(반 2:34~35, 44~45). 이것이 시대의 마지막 추수이며(계 14:14~20), 돌아온 주 예수 그리스도와 천군 천사들에 의해서 수행될 추수이다(마 13:36~43, 47~50). 또한 우리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적 왕국을 재촉할 일련의 사건들이다(단 2:34~35, 44~45).
9. 왕국의 현실화
중재적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에 의해서 세워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칠 년 또는 약간 긴 기간동안에 지상에서 횡령자를 쫓아 낼 섭리적이고 즉각적인 재앙에 의해서 표시될 것이다. 이들 재앙들은 그의 손에 지상에 행할 일곱 인을 가지시고 천국에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행하여 질 것이다. 하나씩 봉인 아래 있는 재앙과, 나팔 및 대접 재앙들이 착착 진행될 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인을 치실 것이다(계 6~19). 그러면 대환란 직전에 교회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오신다(살전 4:13~17; 계 19:7~8,14).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서 그에게 위임된 권위를 행사하기 시작할 것이다(마 28:18; 계 11:15~17). 그리스도의 몸소 임재 하심은 이 왕국이 갖는 최상의 것이다. 온 세상을 채우며 증대하는 것은 반석이신 그리스도시다(단 2:34~35, 44~45). 그리스도께서는 영광가운데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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