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그리스도06: 계시록을 읽는 자의 복(6)(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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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 그리스도06: 계시록을 읽는 자의 복(6)(계 1:1)
묵시록의 성격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은 요한 계시록의 성격을 특징짓는 선언이다. 먼저 요한 계시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임을 선언한다. 둘째로 그 계시를 그리스도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선언한다. 셋째로 그 계시를 천사에게 주신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한다. 넷째로 그 계시를 요한에게 전달한 메신저가 천사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다섯째로 그 계시를 기록한 인물이 요한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요한 계시록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계시요,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통해서 요한에게 전달하여 기록하게 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선언하였다. 이것은 광야시대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천사를 통해서 모세에게 전달하였고, 천사로부터 전달받아 기록한 모세의 율법이 하나님의 토라(Torah) 또는 계명들(Mitzvot)임을 선언한 것에 비교된다.
그러나 여기서 ‘계시’란 말은 ‘묵시’란 뜻을 더 강하게 내포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에서 ‘계시’란 말은 헬라어 단어 ‘아포카뤼프스’(?ποκ?λυψι?)로써 ?πο(~로부터 멀리)와 καλυπτω(덮는다. 감춘다)의 합성어이며, ‘베일을 벗긴다,’ ‘숨은 것을 드러낸다,’ ‘비밀이었던 것이 밝혀진다,’ ‘숨겨진 사건이 폭로된다’는 뜻이다. 또 이 단어 ‘아포카뤼프스’(?ποκ?λυψι?)는 문자적 의미의 ‘계시’란 뜻보다는 ‘묵시’란 뜻으로 쓰이며, 문학 장르의 하나인 ‘묵시문학’에 주로 쓰인다. 따라서 문학적 성격을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으로 분류된다. 요한계시록이 묵시문학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계시적 성격이나 예언적 성격이 없지 않다. 그래서 ‘계시록’ 혹은 ‘예언서’ 혹은 ‘묵시록’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묵시와 예언과 계시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볼 필요를 느낀다. 묵시록은 스토리로 엮어진 긴 글이면서 ‘희망’과 ‘인내’와 최후승리와 최후심판을 다룬다는데 있다. 따라서 묵시록은 하나님의 백성이 현재 이 세상에서 고난당하고 있는 현실과 동터오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승리, 즉 장차 하나님께서 가져다주실 구원과 축복들에 대해서 말한다. 유대교적 배경에서 보면, ‘올람 하바’(Olam Ha-Ba)에 대한 ‘하티크바’(Ha-Tikvah) 곧 ‘다가올 세상’에 대한 ‘희망’에서 찾을 수 있다. 묵시록은 영화나 비디오가 없던 먼 옛날에 극장무대에 올린 드라마와 같아서 다가올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드라마는, 마치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하듯이, 많은 상징들을 통해서 암시적으로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예를 들면, 백색은 선(善)을, 적색은 악(惡)을 대표한다. 숫자 7은 어떤 것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크고 온전하게 채워진 것을 상징하며, 6은 사람이나 마귀가 하나님의 요구에 충분하게 도달하지 못함을 즉 부족과 타락을 상징한다. 다니엘서는 제국과 제왕들을 짐승들로 묘사하고 있다. 다니엘서는 여러 짐승의 몸을 한 몸에 가진 이상한 짐승도 소개하고 있다. 다니엘과 같이 에스겔과 스가랴도 그들 책의 일부분을 묵시적 형태로 쓰고 있고, 계시록에 언급된 상징들과 형상들이 이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유대교 묵시록들은 고대 바벨론과 페르시아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의 이스라엘나라의 회복이란 희망에 연결되어 있다.
예언과 묵시와 종말의 관계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예언서로 알고 있는데, 예언(Prophecy)은 묵시(Apocalypse)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많다. 첫 번째로 예언자들은 시내산 언약의 내용(Torah)을 성찰한 해석자들이었고, 묵시록 저자들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을 성찰한 해석자들이었다.
두 번째로 예언은 단편적인 글인데 반해서 묵시록은 사상체계에 있어서 비교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세 번째로 예언은 그 목표가 민족적인데 반해 묵시록은 개인적이다. 신학자 몰트만은 예언을 민족경륜으로 묵시록을 시대경륜으로 분류하였다. 따라서 예언은 언제나 현재적인 상황에서 각 시대의 요청에 따랐고, 묵시록은 역사성을 무시한 채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제시한다.
네 번째로 예언과 묵시록의 형성 시기는 각각 다르다. 예언은 주로 북이스라엘 왕국 멸망 전후 주전 8세기와 바벨론유배전후시대인 주전 7-5세기로 볼 수 있으나, 묵시록은 주전 2세기에서 주후 1세기말까지로 볼 수 있다. 다섯 번째로 예언은 저자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나, 대개의 묵시록은 가명으로 되어 있다. 가명을 쓴 이유는 문헌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함이었거나, 박해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언과 묵시 사이에는 공통점도 많다. 첫 번째로 예언과 묵시는 하나님의 뜻을 민중에게 전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예언에서는 민중의 기대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고, 묵시에서는 세상에서 좌절한 민중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두 번째로 예언과 묵시는 박해나 배교의 위기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같다. 세 번째로 예언과 묵시는 점차적으로 전 세계, 전 역사의 운명을 논한다는 점에서 같다. 회개와 회복을 논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그러나 예언에서는 주로 회개와 사회개조를 부르짖고, 묵시에서는 우주의 개조와 천상의 비밀을 공개한다.
네 번째로 예언과 묵시는 목적과 시대환경과 방향에 있어서 유사성이 있다. 예언자들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고, 묵시록 저자들은 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자들이다. 다섯 번째로 예언자나 묵시록 저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신의 영감, 곧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를 경험한 자들이다.
묵시(?示)와 종말(終末) 사이에는 차이점들이 있다. 종말은 ‘끝’이라는 말에서 왔고, 세상 역사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그러나 묵시는 종말의 시간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환상과 상징적인 현상을 말한다. 그러므로 종말은 시간의 문제이고, 묵시는 종말의 시간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문제이다.
신약성서에서의 종말론은 유대교의 미래종말론이나 일부 기독교인들의 시한부종말론과 크게 다르다. 신약성서종말론의 특징은 현재종말론이다. 현재종말론이란 종말이 성령의 오심과 능력으로 ‘이미’ 지상의 교회 안에서 출범했다는 가르침이다. 이를 다른 말로 ‘시작된 종말’이라고 부른다. 유대교에는 이 시작된 종말론이 없다. 신약성서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미래종말을 여전히 희망한다는 점에서 묵시문학사상에 한발을 걸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적인 묵시문학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계시와 묵시와의 관계
바울은 로마서에서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영광 또는 하나님의 승리가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적 삶속에서 이미 영적으로 성취된 사실을 강조하면서 종말은 이미 그리스도인의 삶속에 현존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할 수 있고, 새로운 피조물임을 선언할 수 있으며, 환란과 핍박을 막연히 견디거나 종말의 축복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고, 누리며 바랄 수 있다고 하였다.
‘계시’(啓示)는 초월자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의미한다. 현현(顯現)이란 변신(變身, Theophany)과 거의 같은 뜻이다. 하나님은 다양한 변신으로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신다. 그러니까 계시의 모습은 변신한 모습인데, 하나님의 참 모습이나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 인간이 육적으로 이해하고 수용 가능한 모습을 말한다. 그리스신화를 빌리면 계시가 무엇인가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올림포스의 최고의 신인 제우스는 난봉꾼으로서 여신들뿐 아니라, 인간의 딸들까지 넘보곤 했다. 번개였던 제우스가 자신의 본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날 경우, 인간은 새까맣게 타죽고 만다. 그래서 백조나 황소나 건장한 미남 청년으로 변신해서 인간 세상에 나타나 알크메네와 세멜레와 같은 인간 여성들을 꼬드겨서 임신을 시키곤 했는데, 그들의 아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들이 헤라클레스와 디오니소스이다. 디오니소스를 임신한 세멜레는 유모로 변신해서 인간 세상에 나타난 헤라에게 속아서 제우스에게 스튁스강에 맹세케 하고 본모습을 보여줄 것을 간청한다. 죽음의 세계인 음부 한가운데를 흐르는 증오의 강인 스튁스강에 대고 맹세하면, 제우스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어서 제우스는 세멜레 앞에 번개로 나타나게 되고, 세멜레는 디오니소스를 임신한 채로 새까맣게 타죽고 만다. 제우스는 5개월밖에 안된 디오니소스를 세멜레한테서 끄집어내어 자신의 허벅지 속에 숨겨 남은 5개월을 채워 출산시켰다고 한다.
그리스신화에서 보듯이 성서에서도 하나님이 여러 형태의 변신한 모습으로 인간들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셨다. 첫 번째 계시의 형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이다. 성서는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인류의 구세주이신 하나님을 드러내 보인다. 두 번째 계시의 형태는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속성들을 드러내셨다. 예수님 안에서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한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 그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복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발견된다. 세 번째 계시의 형태는 인간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님이시다. 하나님의 깊은 것조차 통달하시는 성령님은(고전 2:10)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일깨워준다.
네 번째 계시의 형태는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모습도 계시의 한 형태이다. 다섯 번째 계시의 형태는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신 사건들이다. 만물을 존재케 하신 창조사건, 출애굽사건과 십자가사건과 같은 구원사건이 계시적 사건들이다. 이밖에도 모세시대의 구름기둥, 불기둥, 불붙는 떨기나무, 모세에게 보인 하나님의 등(출 33:23), 예수님의 부활사건, 능력 행하심이 다 계시적 사건들이다. 이런 다섯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의 글이다. 계시록이 하나님의 역사경륜과 계획을 환상과 말씀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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