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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의 선민[출19:1-6,벧전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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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6,109 2002.09.15 23:30

본문

세계에는 우수한 민족들이 많습니다만, 그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민족을 말한다면, 저는 유대인과 한국인을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두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민족입니다. 이 두 민족은 지정학적으로 대륙을 잇는 점이지대에 놓여 있어서 강대국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고, 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을 이룬 횟수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 나라를 떠나 남의 나라에 흩어져 사는 사람도 인구 비율로 보아서 가장 많은 민족들에 속합니다. 세계에 흩어져 살아온 역사가 이미 삼 천년에 가까운 유대인의 재외 동포의 수는 엄청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에 못지 않게 재외 한인 교포의 수도 540만이 넘고 있습니다. 소수의 이민자들을 제외한 이들 대부분은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고국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민족은 유대인들이고, 두 번째 불행한 민족은 우리 한민족입니다.
그리고 이 두 민족은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유래없이 성공한 민족이기도 합니다. 오랜 일제의 수탈과 6.25전쟁에도 불구하고, 또 강대국들의 정치 군사적 간섭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이 국민 일인당 소득 만불 시대에 접어들었고, 세계 10대 무역국에 속할 만큼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때인 1948년 5월 14일 건국한 인구 5백 30만의 이스라엘도 국민 일인당 소득 13,000불을 넘기고 있습니다. 물론 부족한 자원과 불모지를 일구어 만들어낸 기적들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우리 민족보다도 더 많은 불행을 겪었고 더욱 열악한 환경에 처했으면서도 경제적으로나 민족정신에서나 신앙에서나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있어서나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유대인 가운데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5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정확한 통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상원의원의 52%, 핵무기조정자의 60%, 대학교수의 30%, 전 세계 노벨상 수상자의 27%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미국 이민 백년사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의 교수직이나 연구직 또는 예능계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하고 있는 최근의 인물들을 제외하면 자랑스럽게 내놓을만한 인물이 거의 없는 우리의 실정에 비교한다면, 우리가 유색인이면서 소수민족이라는 점을 충분히 감안한다하더라도, 유대인들이 우리 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들이 우리보다 잘해나갈까요? 오늘은 이 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 해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세운 교회 가운데 가장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개의 교회가 나옵니다. 하나는 고린도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빌립보 교회입니다.
상당수가 노예 출신이었던 고린도 교회는 바울과 그의 선교팀이 18개월이나 장기 체류하면서 복음과 사랑을 쏟아 부었던 곳이었지만, 사례비는 고사하고 선교지원을 전혀 하지 않았던 교회입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는 파벌이 난무했고, 소송문제와 방탕과 우상숭배와 예배 때의 무질서와 광신적인 은사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일부 교인들 가운데는 바울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면서 매우 비굴한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이런 심한 행동들의 배경에는 노예 출신들이 갖기 쉬운 부족한 자긍심과 자기 비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또는 "엽전이 그렇고 그렇지." 하는 식의 체념이나 절망, 자조(自嘲)로 패배를 합리화시키는 노예근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달랐습니다. 고난과 박해 중에서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개척교회 당시부터 바울 일행의 선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선교지원에 대해서 "환난과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다"(고후 8:2)고 하였고,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한다"(고후 8:3)고 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빌립보서에서도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 4:18)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점이 빌립보 교회와 고린도 교회 사이에 생겼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빌립보 교회와 고린도 교회를 차이 나게 하는 것일까요?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의식의 문제였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로마 직할시의 시민들이었습니다. 자치뿐 아니라,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의 면제와 로마에 사는 사람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렸던 로마제국의 시민권 자들이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은 스스로를 '로마 사람'(행 16:21)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긍심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선민의식이 강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고린도 교인들은 노예 근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긍심이 부족했고, 선민의식이 없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차이 나게 하고, 민족과 민족을 차이 나게 하는 것은 자원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의식입니다. 그 민족의 의식입니다. 오늘의 이스라엘이 있게 한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선민의식입니다. 이런 선민의식 때문에 유대인들은 지난 이 천년 동안 무려 1,200백만이 학살되는 수모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1,800년 이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 버린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수 천년을 나라없이 살아온 민족이었지만, 그들은 역사에서 사라지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 그 자긍심과 선민의식을 더 한층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야. 우리 민족은 만국 중에서 택함 받은 민족이야. 너는 자랑스런 유대인이야. 너는 신에게 선택된 아들이야. 너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의 딸이야." 이것이 유대인의 아이들이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에서부터 듣고 배운 창조적 언어였던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실패나 패배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지수(指數)로 나타낸 것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좌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를 0으로, 혹심하게 느끼는 상태를 마이너스 10으로, 오히려 발전적 계기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플러스 10으로 했을 때, 유태인계 미국인이 +5, 영국이나 독일 등 게르만계 미국인이 +3, 라틴계 미국인이 -2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 한국인의 패배 감각 지수를 측정한다면 어떻게 나타나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마이너스 후반부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좌절감 지수가 입증하는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이 선택된 민족의 아들과 딸이란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과 선민의식 때문에 강제 추방당했던 유대인들이 언젠가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돌아간다는 야훼와의 약속만을 믿고 2천 년 가깝게 남의 나라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약속의 땅에 자기네 조국이 세워졌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손에 들고 등에 질 수 있는 생활 도구만을 챙겨들고 조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캠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기약 없는 한낱 약속을 2천 년이나 기다리는 집념은 그들의 선민의식과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에 비하여 특수한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그들의 역사는 창조주 야훼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즉 믿음의 역사를 지닌 민족입니다. 유대 민족이 타민족과 다른 점은 그들이 수 천년 전에 하나님과 맺은 약속에서 비롯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짧게는 250년, 길게는 430년의 오랜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3천 3백년전일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3개월만에 시내 반도의 남단에 솟아 있는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시내산은 화강암과 섬록암으로 형성된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산악지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곳에서 1년동안 야영합니다. 이 기간 중에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상 영원히 남을만한 중요한 계약을 하나님과 맺게 됩니다. 이 계약을 우리는 '시내산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계약에 의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민이 되었고,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은 이 계약에 얼마나 충실했느냐에 따라서 좌우되었습니다. 3천 3백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계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 속에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 출애굽기 19장 1절부터 6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놓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모세 너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대로 전해라. 내가 너희를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어떻게 구출해냈으며, 또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서 이곳으로 인도해냈는지를 잘 알 것이다. 세계가 다 내 것이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모세는 곧바로 하산을 해서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모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전해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일제히 응답하기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우리가 다 그대로 행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세는 또 백성들의 결의를 하나님께 전함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엄숙한 언약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모세와 백성들은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고, 의복을 빨면서 3일간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엄숙한 언약식을 가졌습니다. 먼저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열두 기둥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바쳤습니다. 제물의 피의 절반을 제단에 뿌리고 나서 언약서 즉 십계명을 낭독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일제히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잘 지키겠습니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제물의 피를 그릇에 담아 백성에게 뿌리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언약의 피입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제사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제물을 나누어 먹고 마셨습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이 시내산 계약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계약의 하나님으로, 그들을 계약의 백성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선민으로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들이 그 많은 고난과 역경과 좌절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른 것은 그들에게 바로 이 선민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기독교인들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중보자로 해서 하나님과 약속을 맺은 구약 즉 오래 전 약속의 민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해서 하나님과 약속을 맺은 신약 즉 새로운 약속의 민족입니다. 이 점을 오늘 저는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1절부터 4절에서 하신 말씀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의 삶에서 탈출하여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신" 구약의 백성이라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침례를 통해서 언약식을 갖고 성만찬을 통해서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마시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선민이요 백성입니다.
공관복음서와 고린도전서 11장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성만찬 제정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할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구약에서 사용된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의 피란 점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계약의 백성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짐승의 피로 맺은 혈맹관계라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혈맹관계입니다. 짐승의 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구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의식 속에서 자긍심을 갖고 고난을 이기고 역경을 이기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남게 되었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이야말로 그들보다 더 큰 자긍심과 선민의식을 가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보통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요 그분의 백성입니다. 그분의 선민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사랑 받는 자들입니다. 선민의식 속에서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요, 그분의 백성이란 의식 속에서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보통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선민의식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나는 뽑힌 사람이요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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