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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이 주는 교훈[수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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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7,374 2002.09.15 23:36

본문

성경에는 요단강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단강이 주는 교훈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요단강의 특성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요단강은 발원지인 헤르몬산으로부터 사해까지의 직선거리가 대략 130㎞이며,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는 약 96㎞입니다. 그러나 강의 전체 길이는 하류의 굴곡 때문에 무려 320㎞가 넘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의 강의 폭은 약 30m, 깊이는 1-3m 정도입니다. 초봄에 비가 많이 내리면 강의 폭은 더 넓어지지만, 강 어느 곳에서도 배가 다닐 수 없습니다. 강폭이 좁고 수심이 낮다보니까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이 60여 곳이나 됩니다. 성서시대에는 요단강에 배도 없고 다리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 여울목들이 전략상 중요한 위치가 되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요단강은 지중해보다 낮은 곳에서 흐르고 있고 낙차도 심해서 흐름이 급합니다. 요단강은 해면보다 약 210m 정도 낮은 갈릴리 호수에서 해면보다 약 398m나 낮은 사해로 흐르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의 낙차가 무려 188m나 되며, 1㎞당 평균 낙차도 약 2m나 됩니다.
갈릴리 호수는 북쪽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여 흘러 들어오는 물을 받아 넓은 호수를 이루고 있으면서 넘치는 물을 요단강을 통해서 사해로 흘러 보냅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갈릴리 호수의 물을 퍼 올려 다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만큼 아주 중요한 수자원입니다.
사해도 한 때는 죽음의 호수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자원의 보고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염해' 또는 '롯의 바다'로 불렸던 사해는 큰 호수로써 지중해보다 무려 398m나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한번 유입된 물은 빠져나가지 못하는 곳이며, 유입되는 물이 매일 7백만 톤에 이르지만 요단 계곡의 뜨거운 열기가 증발시키는 양도 그에 못지 않아서 호수 안팎에는 많은 양의 소금 덩어리가 형성되어 있고, 염도가 보통 바다의 5배가 넘는 25%나 되는 곳입니다.
사해는 많은 양의 소금뿐 아니라, 유황과 질산 성분의 물질들이 많이 녹아 있고, 비누와 비료의 원료가 되는 포타슘의 매장량은 전세계가 100년간 쓰고도 남을 양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해 주변에는 사해의 물에서 광물질을 뽑아내는 공장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또 사해의 물은 피부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뛰어나고, 이곳의 진흙은 피부미용과 신경통에 아주 좋으며, 산소의 양이 지중해보다 15%나 더 많고, 또 기후가 건조해서 호흡기 질환 치료에 아주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따라서 사해 근처에는 이런 질병들을 치료하는 특수 병원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렇게 물이란 갈릴리 호수든지, 사해든지 간에 쓰기에 따라서는 아주 중요한 자원이 됩니다. 그리고 이 두 호수 사이를 흐르는 요단강 물은 생동감이 넘칩니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해서 힘차게 흐르는 물은 맑고 시원한 쾌감을 줍니다. 그리고 이 물은 이스라엘 민족의 중요한 생명 줄이었으며, 역경의 삶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역사와 삶의 현장은 강변을 따라 발전해 왔고, 강과 함께 살고 강물에 의존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강물이 있는 곳에 인간과 동물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어류들이 번식하며, 식물들이 뿌리를 내립니다. 이와 같이 물은 안팎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기 때문에 수많은 생물들이 함께 공존해 나갑니다.
물은 융통성이 있고, 유연하면서도 흐르는 강물은 왕성한 힘과 괴력을 지닙니다. 물은 변화와 변신의 명수입니다. 열을 받으면 수증기로 변신하고, 기온이 떨어지면 서리나 어름으로 변신하고, 때로는 창공에 흐르는 구름으로 또는 촉촉이 내리는 비로 변신합니다. 담는 그릇에 따라서 물은 움직입니다. 어떠한 곳이라도 물은 적응해 나갑니다.
물은 생물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생수이며, 부정한 것을 씻어내는 정화수이며, 무수한 생물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장이기도 합니다.
물은 순수하면서도 유연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모든 것에 접하여 꺾임이 없고, 더 넓은 대양을 향해 쉬임없이 전진하며, 온갖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여 정화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시원함과 해갈을 주시며, 다양한 인간들을 사랑으로 품으시며, 죄로 더러워진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정화시키시며, 생명에 필요한 생수를 공급해 주십니다.
두 번째로 요단강을 배경으로 해서 일어난 몇 가지 성경 이야기들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까합니다.
첫째, 말씀의 중요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오랜 종살이를 마치고 약속의 땅을 찾아 모세의 인도아래 세상과 죄악의 상징인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사십 년간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광야에서 유리 방황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새 지도자 여호수와의 지도아래 놓이게 됩니다. 이제 이 강만 넘으면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물이 불어서 언덕까지 넘치고 있었습니다(수 3:15). 해마다 봄철이면 레바논 산지에서 녹아 내리는 물과 연중 강우량이 제일 많은 늦은 비로 인해서 요단강 물이 불어났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민족이 건너고자한 지역이 사해 근처 요단강 하류여서 강이 넓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궤를 맨 사람들이 요단강에 이르러, 그들의 발을 물 속에 넣었을 때, 위로부터 흐르던 물은 그치고, 북으로는 엄청난 땜을 이루면서 남으로는 마른땅이 나오게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땅을 밟고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모형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수하고, 그 말씀 그대로 믿고 따를 때에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말씀대로, 설교말씀대로, 교사의 가르침대로 믿고 실천에 옮기면 요단 강물이 갈라지는 것과 같은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실천하면 요단강 같은 장애물도 극복될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텔레비죤 설교에서 "믿음은 상반된 이치 혹은 모순된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가능성의 사고로 장벽을 뚫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나아가면 요단강 같은 장벽도 돌파할 수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무장하고 자신감을 앞세우고 나아가면 여리고성같은 난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모순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믿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창조신앙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심어주신 약속의 땅을 그들이 차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신 약속과 꿈을 우리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둘째, 순종의 중요성입니다.
열왕기하 5장 1절 이하에 보면, 시리아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은 나환자였습니다. 그가 사마리아에서 잡혀온 유대인 여자아이의 정보를 듣고 이스라엘에 가면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왕의 허락을 받아 금은 보화를 싣고 이스라엘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자기 옷을 찢으며 탄식하기를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데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단 말인가"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옳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찾아가야 할 엘리사 선지자를 찾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왕을 찾아갔기 때문에 하마터면 병을 고치지 못할 뻔하였습니다. 세상에는 나아만 장군과 같이 이런 저런 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지만, 찾아야 할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권세 있는 자를 찾으며, 돈 있는 자를 찾으며, 점쟁이나 무당을 찾으며, 부처를 찾으며, 의술만을 의존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먼저 기도로 찾아가야 합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나아만에 관한 소문을 듣고 왕에게 기별하여 그를 자기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말들과 병차들을 거느리고 당당하게 엘리사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얼굴도 한 번 내밀지 않은 채, 종만 보내어 말했습니다. "당신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시오. 그러면, 당신의 살이 옛날처럼 깨끗하여질 것이오." 이 기별을 전해들은 나아만 장군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습니다. "다메섹의 강물들이 요단강만 못하단 말인가, 내가 거기서 씻으면 오히려 더 깨끗하지 않겠는가" 라며 말머리를 돌리려 했습니다. 그 때에 그의 현명한 부하들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장군님, 선지자가 그보다 더 큰일을 행하라고 하였으면 행치 않았겠습니까? 하물며 씻고 깨끗하라고 하였다해서 분개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그 때 나아만은 깨닫고 순종하여 요단강에 내려가 일곱 번 씻고나서 깨끗하여 졌습니다.
나병은 문명이 발전되기 이전에 흔했던 피부병의 일종으로 살이 썩고 문드러져도 고통을 모르는 병으로 손가락이 끊어져 나가고 코가 떨어져 나가는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1971년 소년의 집을 퇴소한 후에 6개월 정도 음성 나환자 촌에 들어가 생활한 경험이 있어서 그들의 고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만, 물에 씻고 나병이 낳았다는 이야기는 아마 성경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앞에서 사해의 물이 피부병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요단 강물이 나병 치료에 효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엘리사의 하나님이 참 신이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신이다' 라는 것과 그 분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만이 오직 살길이란 점을 나아만 장군에게 일깨워준 사건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셋째, 씻음의 중요성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세례요한이 요단강에 서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요한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고 씻으셨습니다. 이 때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있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인침을 받으셨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타인을 위한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아만이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 물에 몸을 씻고 난 후에 어린아이와 같은 피부를 얻고, 전혀 새롭고 복된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죄용서 함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새롭고 복된 삶을 받아 누릴 수가 있고, 이전과 다른 그리스도인다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넷째,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열왕기하 6장 1절 이하에 보면, 선지자 엘리사와 그의 학생들이 요단강 가에서 채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학생이 빌려온 도끼로 나무를 찍다가 도끼를 그만 물 속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이 학생은 빈 도끼자루만 손에 들고 탄식 섞인 소리로 선지자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일을 어쩌지요. 이것은 빌려온 도끼입니다." 이 때에 선지자 엘리사는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를 떠오르게 함으로서 잃은 도끼를 찾게 해주었습니다.
살다보면 우리 신앙인들도 실패할 때가 있고, 병들 때가 있고, 실망하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손에든 빈 도끼자루를 바라보며 탄식하며 애통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선지생도와 마찬가지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잃었던 도끼를 되찾고 하던 일을 마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자주 기도하셨고,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요단강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말씀의 중요성, 순종의 중요성, 회개의 중요성,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이뿐 아니라, 요단강처럼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시원함과 해갈을 주시며, 다양한 인간들을 사랑으로 품으시며, 죄로 더러워진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정화시키시며, 생명에 필요한 생수를 공급해 주십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번 한 주간동안도 시원한 요단강 물을 생각하시면서 복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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