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바라본 두 세계[신34:1-12]
본문
한 늙고 병든 인디안 추장이 자기를 대신해서 부족을 이끌 후계자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부족의 장로들은 가장 용맹스럽고, 지혜 있고, 건장한 젊은이 세 명을 뽑아서 추장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추장은 세 명의 젊은이들을 곁에 불러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을 가로막고 있는 저 눈덥힌 높은 산을 보아라. 너희들은 저 산의 정상에 다녀오너라. 그리고 거기서 너희가 정상을 밟고 왔다는 증거를 하나씩 구해서 가져오너라." 세 명의 건장한 젊은이들은 각자 등산 장비를 갖추고 산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얼마 후에, 젊은이 가운데 한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눈 속에서만 피는 한 송이 꽃이 들려 있었습니다. "저는 산꼭대기서 눈 속에 피어난 강인한 꽃을 보고 그것을 가져 왔습니다." 추장은 말없이 그것을 넘겨받았습니다. 두 번째 젊은이가 도착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산꼭대기에서 커다란 바위를 보았습니다. 그 바위를 힘껏 밀어내고 그 밑에서 자라는 강인한 이끼를 가져왔습니다." 추장은 그것도 말없이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젊은이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와 추장 앞에 섰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울창한 숲과 드넓은 들판을 보았습니다. 강물이 넘실거리고, 푸른 초목이 가득한 산너머에 있는 계곡과 평원은 우리 부족이 앞으로 대를 이어 살아도 좋을 만치 충분한 땅이었으며,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 부족이 어떻게든 이 산을 넘어 저 골짜기로 들어서면 앞으로 오랜 세월동안 우리 부족은 아무 걱정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고요. 그래서 저는 추장님께 그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서둘러 달려 왔습니다." 추장이 말했습니다. "네가 제대로 보았다. 산에서 꽃과 이끼를 구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산 넘어 정상에 올라 푸른 꿈과 비전을 품을 수 있는 가슴은 더욱 중요하다. 지도자는 바로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네가 우리 부족의 꿈을 보았으니, 이제 너는 추장이 되어 그 꿈을 이루어 보아라. 나는 너를 선택하겠다."
우리는 이 늙은 추장의 현명한 선택과 한 젊은이의 꿈과 용기 속에서 그들 부족의 밝은 미래를 예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 34장에서도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 자기 민족의 꿈과 미래를 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만나게 됩니다.
모세는 처음 40세 때까지 이집트의 바로 왕궁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바로의 후계자로 지목될 만치 장래가 약속된 젊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집트인이 아니라, 히브리인이란 사실을 알았고, 이집트인과 다투는 히브리인을 돕다가 그만 이집트인을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여 80세가 될 때까지 40년간을 양치는 목자로 생활했습니다. 나이 80세 때에 호렙산에서 불은 붙었지만 타지 않은 가시 덜기를 보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변신합니다. 이집트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노예생활을 했던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킨 모세는 그 후로 120세가 될 때까지 40년간을 황량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였고, 그들을 약속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요단강 동편에로 인도하였습니다.
요단강 동편 모압평지에 이른 모세는 120세의 노구를 이끌고 느보산의 비스가 정상에 오릅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두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는 자신과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온 과거의 세계였습니다. 40년 세월을 풀한 포기 보기 어려운 광야에서 텐트 치고 살아온 삭막하고 험난한 세계였습니다. 노예와 죽음과 고난과 시련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곳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꿈과 미래가 담긴 세계요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가나안의 세계였습니다. 비록 자신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 들어 갈 수 없는 막힌 세계였지만, 충실한 목자로써 자신이 이끌고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열린 세계였습니다. 그곳은 약속의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모세는 느보산의 비스가 정상에서 또 하나의 두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살아온 120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매우 고달프고 험난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의 삶은 말 그대로 사막 같은 광야에서의 삶이었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고, 자기 집이나 토지를 갖지 못했고, 텐트를 말아 매고 끝없이 이동했던 유랑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영안의 눈을 들어 새롭고 영원하며 평화롭고 안락한 새로운 축복의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의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약속의 땅 가나안은 모세에게 막힌 세계일지라도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려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서 조용히 그리고 혼자서 육신의 눈을 감았습니다. 아무도 그의 시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모세는 죽어서 승천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느보산의 비스가 정상에서 또 하나의 두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늙고 꼬부라져 이 생을 마감해야할 자신의 세계와 그 동안 자신이 키워온 젊고 패기 찬 후계자 여호수아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비록 미래의 세계는 자신에게 막힌 세계일지라도, 여호수아에게는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모세는 지도자의 눈을 들어 또 한 세대의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열린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자신은 평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꾼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됐지만, 자신의 바톤을 이어 받아, 달려왔던 그 길을 이어 달려 줄, 충실한 후계자에게 열린, 미래의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꿈과 미래가 담긴 약속의 땅 가나안의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후회없이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캄캄한 세계를 향해서가 아니라, 밝고 환한 활짝 열린 새로운 세계를 꿈꾸면서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96년 한 해를 힘겹게 올라 97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정상에 올라서 있습니다. 96년과 97년을 갈라놓는 분수령에 올라서 있습니다. 96년이란 과거의 세계와 97년이란 새로운 세계를 갈라놓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이 분기점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행동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과거를 정리해야 합니다. 묵은 관습과 악습들을 떨어버려야 합니다.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과거를 정리해야 합니다. 과거에 붙잡혀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열린 미래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미래발 열차를 타야할 사람은 과거란 짐 보따리를 버려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기독교인' 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전 것을 버린 사람, 과거를 끊어버린 사람,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사람(롬 6:6),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린 사람(엡 4:22), 그리고 나서 새로 태어난 사람, 거듭난 사람, 중생한 사람, 과거를 물 속에 장사지내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부활한 사람이란 뜻이 아니겠습니까?
둘째, 새로운 각오와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열린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 새로운 각오가 필요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이 있듯이 새해는 새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따라서 과거에 어떻게 살았던 지간에 이제부터는 새롭게 살겠다, 삶의 행동양식을 바꾸겠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겠다. 사람들 앞에 성실하겠다는 의지적 또는 신앙적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란 사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무공무원이었습니다. 그는 비리를 일삼고 사람을 속여 부당한 세금을 물게 하여 자신이 착복하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난 후에 과거의 잘못된 삶을 정리하고 새 사람으로 완전히 돌아섭니다. 그는 말과 생각만으로 새 사람이 되지 않고, 행동양식의 변화를 통해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이 소유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만일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 있으면 사배로 갚겠다고 공약했습니다(눅 19:8).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 회개로 삭개오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됩니다. 우리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과거의 묵은 누룩도 삭개오식으로 제거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2-24절의 말씀에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3-14절에서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사람들, 성령으로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패배에 찌든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열린 미래를 향해서 새 출발해야 합니다.
셋째, 열린 미래를 소유하기 위해서 큰 비전을 가져야합니다. 창세기 13장 14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꿈과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이 꿈과 비전이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열린 미래를 바라다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없이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늙은 추장과 마을 앞산에 오른 한 젊은이와 느보산 비스가 정상에 오른 모세와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여호수아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미래가 닫힌 늙은 추장과 모세에게도 미래를 보는 눈이 있었다는 것과 미래가 활짝 열린 한 젊은이와 여호수아에게도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 앞에 아무리 좋은 세계가 열려 있다해도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소유하겠다는 마음의 소원이 없이는 자기의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은 한 송이 꽃이나 바위 밑에 핀 이끼에 만족하기보다는 산 아래에 전개된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며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소년이 항상 땅만 내려다보고 걷는 습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소년은 성인이 돼서도 넝마주의를 하다 인생을 마치게 됐습니다. 또 다른 한 소년은 길을 걸으면서 높은 하늘과 우뚝 솟은 빌딩을 쳐다보며 자랐습니다. 그는 훗날 수 십층짜리 빌딩들을 소유한 대기업의 회장이 됐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 사람이 무엇을 바라고 사느냐에 따라 그 삶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와 미래를 한 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살아온 과거를 반성하고 살아갈 미래를 설계할 때입니다. 잘먹고 잘살겠다는 육신의 세계뿐 아니라, 신앙의 세계, 영적인 세계를 함께 설계할 때입니다. 또 나 자신의 세계뿐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 즉 우리 후세에게 열린 세계도 바라볼 때입니다.
이제 한해가 막을 내리는 순간입니다. 몇 시간이 지나면 새해가 되고, 새해가 되면 우리들의 나이테는 하나 더 그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반복되다가 어느덧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때를 맞게 됩니다. 그날을 위해서 모세처럼 값진 삶을 살아야 될 줄 압니다. 모세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는 보다 낳은 세계와 열린 미래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광야에 살면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저 세상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세대를 살면서도 다음 세대를 잊지 않았습니다. 새싹들에게서 피어나는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열린 세계를 향해서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 봅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의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확실하게 바라봅시다. 여러분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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