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복음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기독교 복음설교 KCCS Digital Archive

새롭고 산 길[고전1:18-2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5,528 2002.09.15 23:35

본문

최근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제3의 길}이란 책을 써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앤소니 기든스는 영국 언론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의 사부'로 불리고 있습니다. 기든스는 토니 블레어가 주창하는 '제3의 길'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든스는 최근에도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의 갱신}이란 새 책을 출간한바 있습니다.
{제3의 길}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소멸된 시점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을 뛰어 넘어 인류가 지향해야 할 정치 사회적 전망을 제시한 책입니다. 한마디로 좌파도 아닌, 우파도 아닌, 좌우를 포용한 제3의 길을 가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제3의 길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길이 아니라, 이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뛰어넘는 새로운 중도좌파의 길을 말합니다.
기든스는 {제3의 길}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서 필요한 평등, 삶의 정치, 개인들의 윤리적 자세, 민주적 가치 프로그램 등과 같은 쟁점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든스는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론을 주도하고 있는데, 한국의 젊은 사회학자들로부터 신사조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성찰적 근대화론이 중시하는 가치는 개인의 창의성 존중, 개인과 사회의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한 조화, 사회세력간 합의를 바탕으로 한 발전과 같은 것들입니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 나라는 돌진적으로 추진해온 근대화로 몸체만 키웠지 관리능력을 키우지 못해서 경제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근대화전략을 근본부터 수정해야한다고 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화를 제창한 기든스의 성찰적 근대화론은 우리 나라가 유력하게 검토해볼 수 있는 대안의 하나라고 합니다.
제가 앤소니 기든스의 {제3의 길}로 설교를 시작하는 이유는 98년을 마감하는 마지막 주일예배에 즈음해서 지난 일년간 앞만 보고 돌진적으로 살아온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오는 99년 새해를 새로운 다짐으로 맞이하자는 뜻에서입니다.
성경을 보면, 고린도서를 쓴 바울과 히브리서를 쓴 저자가 '제3의 길'을 제안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과 22-24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 . . 유대사람들은 표적을 구하고, 그리스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되, 십자가에 달리신 분으로 전합니다. 이것은 유대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사람에게나 그리스사람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았습니다.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했던 이유는 그들이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누가 메시아인가는 그가 행하는 표적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마가복음에 18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각각 20개, 그리고 요한복음에 7개가 실려있습니다. 이들 이적들은 한 마디로 예수가 메시아였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표적들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이 지혜를 찾았던 이유는 헬라인들이 지혜만이 그들을 이데아의 세계 즉 참 실재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말씀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참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를 찾는 이방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면서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 받을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이 지혜를 구하였지만, 그들이 구하고 찾았던 것으로는 아무라도 구원에 이를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9-21절에서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사 29:14) 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리석은 선포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25)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1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은 유대인들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헬라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능력을 통해서 메시아의 오심을 간절히 기대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참 길을 찾고 있었고, 헬라인들은 철학의 지혜를 통해서 이데아의 세계로 옮겨갈 수 있는 참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바라던 바를 얻지 못했고, 찾던 바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헬라인들이 찾고자 했던 참 실재에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요,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시아이시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히브리서 저자의 믿음은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이 구했던 율법의 길도 아니오, 헬라인들이 찾았던 철학의 길도 아니란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가장 새롭고 산 길인 십자가의 말씀의 길을 제 3의 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 신명기와 여호수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3의 길'을 제안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이 신명기서에 다섯 번, 여호수아서에 두 번 나옵니다. 여기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길 즉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제3의 길'입니다. 그 길만이 복 받고 사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8장 1-14절을 보면, 제3의 길을 걸어 받을 복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주의 깊게 지키면,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세상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너희에게 찾아와서 너희를 따를 것이다. 너희는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태가 복을 받아 자식을 많이 낳고, 땅이 복을 받아 열매를 풍성하게 내고, 집짐승이 복을 받아 번식할 것이니, 소도 많아지고 양도 새끼를 많이 낳을 것이다. 너희의 곡식 광주리도 반죽 그릇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에게 대항하는 적들이 일어나도, 주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치실 것이니, 그들이 한 길로 쳐들어왔다가, 일곱 길로 뿔뿔이 도망칠 것이다. 주께서 명하셔서, 너희의 창고와 너희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이 넘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 길로만 걸으면, 주께서는 너희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백성이, 주께서 너희를 택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보고, 너희를 두려워할 것이다. 주께서는,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너희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이 땅에서, 너희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땅의 소출이 풍성하도록 하여 주실 것이다. 주께서는, 그 풍성한 보물 창고 하늘을 여시고, 철을 따라서 너희 밭에 비를 내려 주시고,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많은 민족에게 꾸어 주기는 하여도 꾸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바, 너희가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진심으로 지키면, 주께서는 너희를 머리가 되게 하고, 꼬리가 되게 하지 않게 하시며, 너희를 오직 위에만 있게 하고, 아래에 있게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너희는, 좌로든지 우로든지,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씀을 벗어나지 말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섬기지 말아라.
오늘날 미국의 부모들은 젊은 X세대를 통해서 얻은 불행했던 경험들을 성찰하고 반성함으로써 새 천년 세대들이 올바른 길을 걷을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미국의 부모들은 청소년들의 탈선을 자신들의 잘못된 삶의 태도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돈을 덜 버는 대신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보아서는 안될 TV채널과 인터넷 사이트를 차단하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학생체벌에 관한 찬반문제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 시끄럽지만,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고, 선한 일들을 행하며, 법대로 행하고, 못된 행위들을 철저히 처벌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복 착용이 늘고 있고, 대도시 4분의 3에서 청소년 통금을 실시하고 있으며, 법정에서는 아동의 잘못에 대해서 부모까지 처벌하는 일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움직임에 대한 근본이유는 부모들에게 자기 자녀들의 삶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들에서는 부모 중의 한 사람이 가정에 남아 살림을 맡아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인기 있는 선택으로써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상당수의 남편들이 가정에 남아 집안 살림과 자녀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 남성들의 모임인 프로미스 키퍼즈(Promise Keepers)나 다른 비슷한 운동들은 남편들로 하여금 더 좋은 아버지와 남편들이 될 것을 다짐하도록 권하고 있고, 이들 가운데 3분의 2가 수입을 줄이고 가정에 돌아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교육방법이 홈스쿨링(home-schooling) 즉 가정에서 부모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미국의 부모들이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새로운 제3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은 어떻습니까? 오늘의 젊은이들은 '시각중독자'(visual junkies)들입니다. 영상을 모든 것처럼 생각하고, 보기에 좋으면 질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빠른 비트(beats)와 빠르게 바뀌는 영상(images)에 길들어진 세대입니다. 뮤직 비디오나 콘서트 또는 비디오게임이나 영화에 빠른 템포의 동작이나 기술적 기교가 넘쳐나지 않으면 금방 흥미를 잃고 맙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지속적인 '히트'(hits)를 요구하는 세대입니다. 오늘의 재미(thrills)가 어제의 것을 능가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지겨워합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끝없는 변화를 갈망합니다. 리모콘(remote control)은 그들의 실재를 상징합니다. 변화는 지속적인 반면, 집중은 단편적입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지금 여기만을 위해서 삽니다. 중요한 결정들이 순간에 좌우됩니다. 미래에 닥칠 앞일을 생각지 않고, 단순히 "하고싶다"(feel like doing)고 느껴지는 것을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결과들에게 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쾌락을 근거로 결정합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곳에 갔었다---그것을 해봤다"(been there---done that)식의 태도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있습니다. 아무 것도 그들에게 충격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이 극단적인 스포츠가 생기고 인기를 얻는 부분적인 이유입니다. 젊은이들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고 싶어합니다. 오늘 재미있어하던 것도 내일 싫증내버립니다. 빠른 비트의 삶은 아이들로 하여금 끝없이 더 큰 재미를 찾게 하지만, 만족은 끝없이 줄어들게 합니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컴퓨터를 통한 가상공간에서 양육된 세대입니다. 전자메일을 사용하고, 자신의 홈페이지를 구축하며, 금지된 사이트들을 즐겨 검색합니다. 그들에게 컴퓨터는 분신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동체 정신이 희박해지고 냉소적이며 불신이 가득합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도덕적 근거의 상실입니다. 결정을 내릴 때, 옳거나 옳지 아니한 것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효과가 얼마나 있는가에 근거합니다. 그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도덕적 가치들이나 진리들의 보편적인 체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상황과 사견의 문제일 뿐입니다. X세대에 사는 7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절대진리와 같은 것은 없다고 믿고 있으며, 그래서 삶 속에 있는 모든 것은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결과가 범죄와 잔혹성을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동정심이나 뉘우침도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강도질하고, 사지를 절단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시점에 도달한 우리 젊은이들은 지난날을 반성하고 새로운 제3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택해야할 새롭고 산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 분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조선 전기의 유학자 이언적(李彦迪/1491-1553) 선생은 그의 문하생들에게 한해 동안 자신의 행실을 양심에 비추어 고백-반성하는 세모삼성(歲暮三省)이라는 관례를 대물림시켰다고 합니다. 세모삼성 가운데 일성(一省)은 연중 남에게 잘못한 일이 무엇인가 반성-고백하는 일이요, 이성(二省)은 내가 속해 있는 가족이나 친족이나 마을의 일에 이기심 때문에 소홀히 한 일이 무엇인가를 반성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송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떠나보내는 한해살이를 깊이 반성하고, 오는 새해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오는 새해만큼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만을 확실하게 믿고 의지하는 신앙의 길 즉 십자가의 말씀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는 송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