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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이유[마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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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7,479 2002.08.31 01:18

본문

지난주에 씨뿌리는 비유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앗은 천국복음을 뜻하였고, 밭은 복음을 듣는 사람의 마음상태를 뜻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라지 비유에서 밭은 세상을 뜻하고, 좋은 씨는 빛의 자녀들을, 가라지는 어둠의 자녀들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씨뿌리는 비유와 가라지 비유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씨뿌리는 비유는 복음을 듣고 깨닫고 실천하는 상태를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주제가 된 반면에, 가라지 비유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공존한다는 것과 마지막 때에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을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씨뿌리는 비유가 신자들의 믿음상태를 지적하고 있다면, 가라지 비유는 왜 이 세상에 어둠의 자녀들이 존재하는지,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라지 비유를 통해서 왜 이 세상에 가라지로 상징되는 어둠의 자녀들이 생겨났는지, 왜 이 세상에 곡식으로 상징되는 빛의 자녀들이 어둠의 자녀들과 공존하게되는지, 또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밭을 잘 가꾸시고 좋은 씨를 뿌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곡식 밭에 가라지가 생긴 이유는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또 이 세상을 움직여갈 사람도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만드셨습니다. 만물의 으뜸으로 만드셨습니다.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진 사회적 동물로 만드셨습니다. 생각하는 동물,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인 천사도 마찬가집니다. 성경에는 천사가 인간보다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정말 타락한 천사라면, 마귀는 분명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이면서 하나님보다는 못한 존재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든 이 좋은 세상을 망쳐놓은 인물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만든 이 좋은 세상에 가라지 같은 어둠의 자녀들이 생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곡식 밭에 가라지가 생긴 것은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든 이 좋은 세상을 망쳐놓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바로 이들 가라지 같은 어둠의 자녀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귀가 '본능의 유혹'이라는 이름의 가라지 씨를 아담과 이브가 영적으로 잠자는 사이에 그들의 마음 밭에 뿌려놓게 되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다는 본능의 유혹이 하나님과의 신성한 약속을 짓누를 만치 커지고 억세져서 결국은 그들 자신과 세상을 망쳐놓고 만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원수는 누구입니까? 예수는 원수를 마귀라고 했습니다. 신학자들은 마귀의 기원을 타락한 천사장 루시퍼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가 하는 주된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발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비방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무를 놓아 하나님의 자녀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악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귀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가 눈에 띄게 직접활동하지는 않습니다.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고 사람을 통해서 활동합니다. 사람을 보면 마귀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마귀의 유혹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누가 마귀를 보아서가 아닙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고 죄를 범했다는 사실만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특성에는 천사도 될 수 있고 마귀도 될 수 있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마귀를 반드시 외부에서 찾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가라지가 될 수 있는 마귀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토인비가 지적했듯이, 개인을 망치는 적이든, 가정을 망치는 적이든, 국가를 망치는 적이든, 적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 자신을 가라지로 망칠 수 있는 마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이 마귀적인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본능의 유혹입니다. 인간에게는 본능이 있습니다. 다른 동식물에도 본능이 있습니다. 본능은 모든 동식물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력과도 같은 것입니다. 본능은 마치 입력된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동식물은 하나님이 입력해놓은 이 본능의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예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본능의 프로그램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이 제어능력여하에 따라서 인간은 좋은 곡식도 될 수 있고, 못된 가라지도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좋은 씨와 가라지 씨로 구별되어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 비유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좋은 씨만을 골라 밭에 뿌렸습니다. 이 말은 곧 인간은 태어날 때 좋은 씨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 후에 생깁니다. 하나님이 뿌리지 아니한 가라지 씨가 덧뿌려지는데서 생깁니다.
그런데 이 가라지 씨가 뿌려지는 시간은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하였고, 16장 13절에서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6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디모데후서 2장 26절에는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는 말씀이 있고,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들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근신하며 깨어있지 아니할 때,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게 되고, 아무 쓸모 없는 가라지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마귀가 와서 가라지 씨를 덧뿌릴 수 없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가라지가 성장하게 내버려두는 이유를 마지막 심판의 때를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게 될까봐서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다 자라게 내버려둔다는 것입니다.
가라지는 독보리의 일종으로 60cm 가량 되며 검은 이삭을 내는데 밀이나 보리와 매우 흡사하여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구별할 수 없으므로 유대인들은 이것을 거짓 밀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라지를 실수로 먹었을 경우에는 역겨움과 경련을 일으키고 설사가 나며 심하면 죽음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한 가라지는 눈에 띌 때쯤 되면 이미 밀에 알곡이 맺혀 있을 때이며, 두 식물의 뿌리가 서로 얽혀 있어서 가라지를 뽑을 때에는 밀에 손상을 주므로 가라지를 뽑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서 '좋은 씨'는 과연 누구입니까? 예수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씨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입니다. 이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유신론자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구세주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임마누엘 성령을 믿는 자들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믿는 자들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믿는 자들입니다. 돈이나 권세보다는 사랑, 진리, 정의와 같은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자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자들입니다. 정의나 진리가 돈이나 권력을 이긴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들 자신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창조주 신앙을 지키고, 정의와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가라지는 과연 누구입니까? 예수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자녀들입니다. 어둠의 자녀들입니다. 이들 마귀의 자녀들은 무신론자, 유물론자, 진화론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만을 인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 진리, 정의와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힘과 권력과 돈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 자들입니다. 힘있는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돈 있고 권세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들 자신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 힘과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입니다.
문제는 가라지를 곡식과 함께 자라게 두었을 때에 고통을 겪어야 하는 쪽은 언제나 곡식 쪽입니다. 폭우가 쏟아져 밭이 물에 잠겨도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피해를 입게되고, 폭염이 쏟아져 밭이 갈라지고 목말라해도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피해를 입게되고, 한파가 불어 닥쳐와도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피해를 입게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까 가라지가 오만해져서 하나님이 없다 심판이 없다 하면서 힘의 논리로 약자를 억압하고 죄를 짓고 불법을 자행합니다.
시편 10장 1-11절을 보면 이런 사정을 너무나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주께서는 그리도 멀리 계십니까? 어찌하여 주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숨어 계십니까? 악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고 핍박합니다. 악한 사람은 자기가 쳐 놓은 올가미에 자기가 걸려들게 해주십시오. 악한 자는 자기 욕망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리는 자는 주님을 모독하고 멸시합니다. 악인은 그 얼굴도 뻔뻔스럽게 벌주는 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말합니다. 그들의 생각이란 모두 이러합니다. 그런데도 악인이 하는 일은 언제나 잘 되고, 주의 심판은 너무 멀어서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니, 악인은 오히려 반대자를 보고 코웃음만 칩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내가 망하는가, 두고봐라. 나에게는 불행이란 없다 하고 말합니다. 그들의 입은 저주와 기만과 폭언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의 혀 밑에는 욕설과 악담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으슥한 길목에 숨어 있다가 은밀한 곳에서 순진한 사람을 쳐죽입니다. 그들의 두 눈은 언제나 가련한 사람을 노립니다. 굴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자처럼, 은밀한 곳에서 기다리다가, 때만 만나면 연약한 사람을 그물로 덮쳐서 끌어갑니다. 불쌍한 사람이 억눌림을 당하고, 가련한 사람이 폭력에 쓰러집니다. 악인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얼굴도 돌렸으니, 영원히 보지 않으실 것이다 합니다.
또 시편 14장 1절을 보면,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모두가 하나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무신론자들이나 유물론자들이나 진화론자들도 먼 옛날 다윗 시대 때와 비교해서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과학이 발달되면서 인간들은 더욱 오만해지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한 것은 상당히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고, 과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밝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98년 8월 12일자 {뉴스위크 한국판}에 실린 "과학과 종교 절묘한 조우"라는 글에 의하면, 과학은 회의에서 출발하고, 종교는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정교한 자연의 법칙이 우주를 탄생시켰다면 그것 자체가 우연이 아닌 창조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고 했고, 진실을 추구하는 방법은 달라도 과학은 오히려 신앙을 살찌우게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 성도들은 가라지와 함께 살아야하기 때문에 더욱 큰 믿음과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자녀들을 마귀의 자녀들과 공존시키고 계신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 한가지는 메기가 청어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이면서도 생명을 지탱시키는 자극제가 되는 것처럼, 가라지도 우리 성도들에게 믿음을 지탱시키는 자극제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가라지를 아주 내버려두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추수 때에 가라지를 먼저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곡식과 가라지 비유'는 세상 끝에 있을 심판의 무서움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43절에서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했지만, 41-43절에서는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3장 10절과 14장 12절을 보면, 이런 이유 때문에 성도들이 인내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알곡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사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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