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고난에 대한 감사[롬6:15-23]
본문
'바울의 구원에 대한 감사1'에서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은 생활의 열매, 성령의 열매, 의의 열매, 성결의 열매, 순종의 열매, 옳은 행실의 열매,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에 관해서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6-17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께 찾아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는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계명을 지키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을 보면, 예수는 제자들에게 행한 고별설교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는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둘째 계명이라고 하시면서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 뜻이 달려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잘 지키는 방법은 참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하는 방법은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곧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사랑하는 것인 줄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부인을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들에게 가장 정의롭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목적이요, 또한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이 좋은 것은 가장 정의롭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냘픈 믿음 한가지만 보시고 죄 많던 우리를 의롭다고 불러주신 것은 우리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서 의롭다고 칭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의롭게 살기를 원해서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15-23절에서 다음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마음놓고 죄를 짓자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기를 누구에게나 종으로 내맡겨서 복종하게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죽음에 이르는 죄의 종이 되거나, 아니면 의로움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여러분은 전해 받은 교훈의 본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써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력이 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으로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로움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와서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마는, 그러한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불법의 노예로써 죄 가운데서 살았지만, 구원을 받은 이제는 의의 종으로써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의 종일 때에는 의로움에 얽매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와 같은 생활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6장 22-23절에서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구원받은 우리가 이제라도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 그 마지막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구원을 받고도 감사치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면 영원히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 이미 받은 구원의 은총 때문이란 것입니다.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격과 감사 때문이지, 구원을 받기 위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마음놓고 죄를 범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불의에 복종하게 하면, 죄의 종이 되고, 정의에 복종하게 되면, 의로움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의롭게 사는 방법으로 첫째는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정의를 믿는 것입니다. 진리가 거짓을 이기고,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고 영생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진리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길과 진리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불의를 물리치시고 정의를 세우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라 살고, 정의의 편에 서면 죽을 것 같지만 결국 그 길이 사는 길입니다. 살되 일시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믿으면 영생하는 것입니다. 거짓인줄 알면서 그 길을 따르고, 불의한 일 인줄 알면서 불의의 편을 들면 잠시 사는 것 같지만, 결국은 영원히 죽습니다. 거짓과 불의한 일은 반드시 밝혀지고 맙니다. 그리고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의롭게 사는 방법으로 둘째는 살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불의를 물리치고 정의를 살리는 것입니다. 거짓을 몰아내고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불의한 일은 죽임의 일입니다. 자신을 죽이고, 가정을 죽이고, 교회를 죽이고, 사회를 죽이고, 국가를 죽이는 일입니다. 살림의 일이 무엇입니까? 살림의 일은 분배를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적당한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벌받아야할 사람에게 상이 주어지고, 상 받아야할 사람에게 벌이 주어진다면 결코 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결국 법과 질서를 죽이는 일이요, 결코 살림의 일이 아닙니다. 사랑이 필요한 곳에 사랑이 주어져야 하고, 식량이 필요한 곳에 식량이 주어져야 하고, 잠자리가 필요한 곳에 잠자리가 제공되어야 의로운 것입니다. 자연상태에서는 내버려두면 망가집니다. 망가지게 내버려두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살림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죽임을 이기는 살림의 일은 벌받을 사람에게 벌을 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살리기 위해서 벌을 주어야지, 죽이기 위해서 벌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죽이기 위한 벌은 그 자체로써 이미 불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사는 방법으로 셋째는 거듭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과거에 얽매어 사는 삶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삶입니다. 과거처럼 죄 가운데 사는 삶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프라하]라는 제목의 영화를 케이블 TV를 통해서 보게되었습니다. 체코 출신의 한 청년이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프라하의 강에서 나치군인들로부터 후에 청년의 어머니가 된 여섯 살 된 소녀를 데리고 수영을 즐기던 외조부가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장면을 담은 기록필름을 보기 위해서 프라하를 방문합니다. 프라하에서 이 청년은 필름보관소에서 일하는 조수 아가씨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 조수 아가씨는 이 청년이 찾아오기 전에 이미 자기보다 한 세대는 더 늙어 보이는 보관소 책임자의 애인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체코 출신이면서도 영어밖에 모르는 청년은 과거 한 세대 전에 있었던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던 셈이어서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삼은 듯 싶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청년은 정말 우여곡절 끝에 조수 아가씨의 도움으로 필름을 찾아내기는 하지만, 필름 통을 들고 호텔로 향하던 길에 사나운 개를 만나 도망가다가 그만 필름을 놓치고 맙니다. 개는 필름의 한쪽 끝을 입에 물고 자기 집으로 갔고, 길에 길게 늘어진 필름은 개 주인이 피다 버린 담배 불에 그만 다 타버리고 맙니다. 과거가 연기로 변하여 날아가 버린 셈입니다. 청년은 다 타버린 필름과 통을 가져가 한 세대 전에 외조부가 살해되고 어머니가 빠졌던 프라하의 강에 떠내려보냅니다. 청년이 프라하에 도착하면서부터 조수 아가씨는 이 청년과 나이 많은 보관소 소장을 번갈아 가며 연애하였는데, 아가씨는 결국 청년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나이 많은 소장은 쓸쓸히 영상에서 사라져 가고, 이 두 젊은이는 부부로써 새 출발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아마도 전쟁으로 얼룩지고 상처뿐인 과거와 구세대를 강물에 흘러보내 버리고, 열린 미래와 신세대를 향해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죄로 얼룩진 우리의 과거는 침례를 통해서 물 속에 장사지내져 버렸고, 하나님의 살림의 능력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의로운 분이라고 했는데, 그 분의 삶이 어떠했기에 의로운 분이라고 했을까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라는 말을 다섯 번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하나님이 어떻게 의로운 분인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입니다. 이 가운데서 로마서 1장 17절,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합 2:4) 한 것과 같습니다."와 3장 22절,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옵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한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 말씀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나타난 믿음으로 의인이 되게 하는 의, 즉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차별이나 조건 없이 주어지는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벌하여 죽이는 심판하는 의가 아니라, 죄인을 용서하고 살려내는 의를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죄인이 받아야할 저주와 벌을 대신해서 자기가 받는 자기 희생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죄의 삯으로 사형을 받아야할 죄인을 대신해서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대속(代贖)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배반한 인간과 화해하시기 위해서, 인간으로부터 화목제물을 기다리지 않고, 친히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로 화목제물을 삼아 먼저 화해를 청하신 먼저사랑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받아서 복된 것을 아무 조건 없이 먼저 주는 나눔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바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고 의롭게 사는 것인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닮아 가는 삶이 바로 감사의 생활입니다. 말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로 풍성하게 맺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감사를 기뻐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보면,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고 했고, 이사야 58장 6절을 보면,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들을 놓아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고 하시면서 정의롭지 못한 예배와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 즉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죽임의 일을 일삼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우리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사는 열매있는 감사생활을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총을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로"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감사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첫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6-17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께 찾아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는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계명을 지키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을 보면, 예수는 제자들에게 행한 고별설교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는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둘째 계명이라고 하시면서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 뜻이 달려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잘 지키는 방법은 참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하는 방법은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곧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사랑하는 것인 줄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부인을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들에게 가장 정의롭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목적이요, 또한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이 좋은 것은 가장 정의롭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냘픈 믿음 한가지만 보시고 죄 많던 우리를 의롭다고 불러주신 것은 우리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서 의롭다고 칭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의롭게 살기를 원해서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15-23절에서 다음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마음놓고 죄를 짓자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기를 누구에게나 종으로 내맡겨서 복종하게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죽음에 이르는 죄의 종이 되거나, 아니면 의로움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여러분은 전해 받은 교훈의 본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써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력이 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으로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로움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와서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마는, 그러한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불법의 노예로써 죄 가운데서 살았지만, 구원을 받은 이제는 의의 종으로써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의 종일 때에는 의로움에 얽매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와 같은 생활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6장 22-23절에서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구원받은 우리가 이제라도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 그 마지막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구원을 받고도 감사치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면 영원히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 이미 받은 구원의 은총 때문이란 것입니다.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격과 감사 때문이지, 구원을 받기 위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마음놓고 죄를 범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불의에 복종하게 하면, 죄의 종이 되고, 정의에 복종하게 되면, 의로움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의롭게 사는 방법으로 첫째는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정의를 믿는 것입니다. 진리가 거짓을 이기고,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고 영생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진리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길과 진리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불의를 물리치시고 정의를 세우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라 살고, 정의의 편에 서면 죽을 것 같지만 결국 그 길이 사는 길입니다. 살되 일시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믿으면 영생하는 것입니다. 거짓인줄 알면서 그 길을 따르고, 불의한 일 인줄 알면서 불의의 편을 들면 잠시 사는 것 같지만, 결국은 영원히 죽습니다. 거짓과 불의한 일은 반드시 밝혀지고 맙니다. 그리고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의롭게 사는 방법으로 둘째는 살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불의를 물리치고 정의를 살리는 것입니다. 거짓을 몰아내고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불의한 일은 죽임의 일입니다. 자신을 죽이고, 가정을 죽이고, 교회를 죽이고, 사회를 죽이고, 국가를 죽이는 일입니다. 살림의 일이 무엇입니까? 살림의 일은 분배를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적당한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벌받아야할 사람에게 상이 주어지고, 상 받아야할 사람에게 벌이 주어진다면 결코 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결국 법과 질서를 죽이는 일이요, 결코 살림의 일이 아닙니다. 사랑이 필요한 곳에 사랑이 주어져야 하고, 식량이 필요한 곳에 식량이 주어져야 하고, 잠자리가 필요한 곳에 잠자리가 제공되어야 의로운 것입니다. 자연상태에서는 내버려두면 망가집니다. 망가지게 내버려두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살림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죽임을 이기는 살림의 일은 벌받을 사람에게 벌을 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살리기 위해서 벌을 주어야지, 죽이기 위해서 벌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죽이기 위한 벌은 그 자체로써 이미 불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사는 방법으로 셋째는 거듭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과거에 얽매어 사는 삶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삶입니다. 과거처럼 죄 가운데 사는 삶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프라하]라는 제목의 영화를 케이블 TV를 통해서 보게되었습니다. 체코 출신의 한 청년이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프라하의 강에서 나치군인들로부터 후에 청년의 어머니가 된 여섯 살 된 소녀를 데리고 수영을 즐기던 외조부가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장면을 담은 기록필름을 보기 위해서 프라하를 방문합니다. 프라하에서 이 청년은 필름보관소에서 일하는 조수 아가씨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 조수 아가씨는 이 청년이 찾아오기 전에 이미 자기보다 한 세대는 더 늙어 보이는 보관소 책임자의 애인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체코 출신이면서도 영어밖에 모르는 청년은 과거 한 세대 전에 있었던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던 셈이어서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삼은 듯 싶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청년은 정말 우여곡절 끝에 조수 아가씨의 도움으로 필름을 찾아내기는 하지만, 필름 통을 들고 호텔로 향하던 길에 사나운 개를 만나 도망가다가 그만 필름을 놓치고 맙니다. 개는 필름의 한쪽 끝을 입에 물고 자기 집으로 갔고, 길에 길게 늘어진 필름은 개 주인이 피다 버린 담배 불에 그만 다 타버리고 맙니다. 과거가 연기로 변하여 날아가 버린 셈입니다. 청년은 다 타버린 필름과 통을 가져가 한 세대 전에 외조부가 살해되고 어머니가 빠졌던 프라하의 강에 떠내려보냅니다. 청년이 프라하에 도착하면서부터 조수 아가씨는 이 청년과 나이 많은 보관소 소장을 번갈아 가며 연애하였는데, 아가씨는 결국 청년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나이 많은 소장은 쓸쓸히 영상에서 사라져 가고, 이 두 젊은이는 부부로써 새 출발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아마도 전쟁으로 얼룩지고 상처뿐인 과거와 구세대를 강물에 흘러보내 버리고, 열린 미래와 신세대를 향해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죄로 얼룩진 우리의 과거는 침례를 통해서 물 속에 장사지내져 버렸고, 하나님의 살림의 능력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의로운 분이라고 했는데, 그 분의 삶이 어떠했기에 의로운 분이라고 했을까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라는 말을 다섯 번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하나님이 어떻게 의로운 분인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입니다. 이 가운데서 로마서 1장 17절,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합 2:4) 한 것과 같습니다."와 3장 22절,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옵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한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 말씀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나타난 믿음으로 의인이 되게 하는 의, 즉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차별이나 조건 없이 주어지는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벌하여 죽이는 심판하는 의가 아니라, 죄인을 용서하고 살려내는 의를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죄인이 받아야할 저주와 벌을 대신해서 자기가 받는 자기 희생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죄의 삯으로 사형을 받아야할 죄인을 대신해서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대속(代贖)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배반한 인간과 화해하시기 위해서, 인간으로부터 화목제물을 기다리지 않고, 친히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로 화목제물을 삼아 먼저 화해를 청하신 먼저사랑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받아서 복된 것을 아무 조건 없이 먼저 주는 나눔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바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고 의롭게 사는 것인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닮아 가는 삶이 바로 감사의 생활입니다. 말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로 풍성하게 맺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감사를 기뻐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보면,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고 했고, 이사야 58장 6절을 보면,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들을 놓아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고 하시면서 정의롭지 못한 예배와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 즉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죽임의 일을 일삼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우리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사는 열매있는 감사생활을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총을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로"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감사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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