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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요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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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070 2003.07.0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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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요 20:11-18)

요한복음 20장에는 간과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말들이 나옵니다. 첫째가 “안식 후 첫날”(1,19,26절)이란 말이고, 둘째가 “내 아버지 곧 너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17절)이고, 셋째가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22-23절)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하신 말씀입니다.
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첫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굴무덤 속에 계신 것은 대략 38-40시간(첫날 금요일 3시간, 둘째 날 안식일 24시간, 셋째 날 일요일 11시간) 정도입니다. 성경에서 숫자 40은 죽음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죽음을 이기시고 일요일 이른 아침에 동녘의 햇살을 받으시며 부활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사도들은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재창조의 사역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부활의 날인 일요일(안식 후 첫날)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주님의 날’(주일)이라 칭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사도들이 한 곳에 모인 날은 모두가 ‘주님의 날’인 ‘안식 후 첫날’이었고, 그날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바로 그날 아침에 마리아는 무덤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16-17절). 그리고 이날 저녁모임에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19절). 그리고 일주일 후인 또 다른 주님의 날에 도마를 포함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이후 초대교회들은 이 주님의 날에 모임을 갖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행 20:7; 고전 16:2; 계 1:10).
부활하신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17절). 이 말씀은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에 비춰볼 때, 엄청난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3장 16절의 ‘독생자’ 예수님이 20장 17절에서는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님을 외아들대신에 ‘맏아들’이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외아들’은 아들이 한 명뿐이란 뜻이지만, ‘맏아들’은 다수의 아들 가운데 맏이란 뜻입니다. 성경 여기저기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맏아들’로, 우리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장 23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로마서 8장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장 6절: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요한일서 3장 1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요한일서 3장 2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이들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양자와 양녀가 된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며, 우리 주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믿음으로 된 양자와 양녀라 할지라도, 천국에서는 그 어떤 차별도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의 맏형제인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실 만큼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조선시대에 첩의 자식들은 서자라 하여 좌족(左族), 반사(半士), 사점박이 등으로 천대받고 과거도 보지 못하고 제사에서도 소외 받으며 가계(家系)상속에서도 소외 받기가 다반사였습니다. 19세기 초에 천주교 신자가 비신자를 전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컸던 고충이 다름 아닌 양반상놈, 적자서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같은 계급으로 인식하는 기독교의 평등사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천당은 좁고 입구도 바늘구멍 같다던데 어떻게 상놈이나 서자가 또 미천한 계집이 들어갈 틈이 있겠느냐는 것이 믿음을 외면하는 큰 이유였던 것입니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데 동원된 선교도구가 바로 프랑스 신부들이 신고 들어온 양말이었습니다. “믿음이란 지극히 공평한 것으로써 그 앞에서는 양반도 상놈도 지아비도 지어미도 또 어른도 아이도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 양말이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서 그 어느 누구의 발에도 신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라고 양말을 신겨만 보이면 손쉽게 깨닫고 예수를 구세주로 믿게 되었다는 것이 1839년에 순교(殉敎)한 베드로 신대보(神大輔)가 샤스탕 신부에게 부친 편지 가운데 적혀 있습니다.
서자들은 제 아비를 “아버지!”하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바 아버지”(롬 8:15) 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 하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서자처럼 차별받지 아니하고, 지극히 사랑스런 자녀로 대우받습니다. 외아들 예수님을 죽일지언정 우리는 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천지에 이만한 아버지가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양자와 양녀에게 상속을 물리지 않기 위해서 호적을 파내어 버리는 세상인심에 비추어 볼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있듯이 드러난 부분보다 숨겨진 부분이 더 크다고 할 것입니다.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22-23절)한 말씀은 사도들에게 특별히 주신 말씀입니다. 이 때의 일은 엘리야가 승천을 앞두고 엘리사를 제자로 택하여 하나님의 사역자로 임직할 때에 갑절의 성령의 은사로 부으시고 이임하셨던 일과 같습니다(열하 2:9-11). 예수님께서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을 사도직에 임직하시고 성령의 능력과 사죄권으로 덧입히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시대와 은혜의 시대를 활짝 연 오순절 날의 성령님의 강림은 이날부터 세어서 50일째 되는 날에 있었습니다. 사도직 임직 때에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말씀에서 성령은 사도직수행에 필요한 능력 또는 은사를 말씀하신 것이고, 오순절 날 임했던 성령님은 믿고 구원받은 모든 자들의 심령 속에 내주동거하시는 임마누엘 곧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시고 천국소망을 이루게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서의 저자는 기록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빛과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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