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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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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945 2003.07.0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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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25)

베드로에게 있어서 A.D. 30년 4월 한 달은 정말 잔인한 달이었을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오고간 한달이었습니다. 4월 1일 베다니 마을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할 때에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쏟아 붓던 일, 2일,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민중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를 외치면서 환호하던 일, 그날 예수님으로 인해서 예루살렘성이 온통 시끄럽던 일, 3일, 성전에 들어가시어 위엄과 권위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던 일, 그리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셨던 일, 4일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으시고 답변을 하셨고, 종말에 관한 비유들을 들려주셨을 때까지만 해도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신다는 생각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고, 한 자리씩 차지할 것이란 부푼 꿈으로 몹시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7일 유월절 식사 중에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고, 또 식후에 포도주 잔을 들어 축사하시고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던 일, 그리고 그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시고,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 앞과 헤롯 안디바와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던 일, 그리고 9일 일요일 아침 극적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일,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칼을 빼어 말고의 귀를 쳤던 일, 곧이어 세 번을 게집 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던 일련의 일들이 베드로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몇 차례 그에게 나타나셨다 해도 여전히 그에게는 충격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심히 예수님을 좇았고, 앞만 보고 달려갔지만, 얻은 것이라곤 패배감과 비열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학뿐이었을 것입니다.
이쯤해서 베드로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본업인 고기잡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무 것도 얻질 못했고 허탕 치는 수고만을 거듭했습니다. 밤이 새도록 던지는 그물을 고기들은 피해갔고, 베드로의 가슴은 텅 빈 그의 배만큼이나 허전하였습니다. 진실로 주님이 함께 하지 않는 베드로의 삶은 고달픔과 쓸쓸함 그 자체였습니다.
바로 이 때 주님께서는 변함없는 애정과 사랑으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이 날도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 모닥불을 피어놓고 베드로와 함께한 다른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포기상태로 돌아오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물었습니다. “뭘 좀 잡았소?” 그들이 대답합니다. “아니오. 우리가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잡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그들은 예수님을 고기 사러 나온 마을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세요, 그러시면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내려보세요. 고기가 잡힐 것입니다.” 그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에 끌어올릴 수 없으리만치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때서야 요한이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주님이시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가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려 주님께로 달려왔습니다. 주님은 이런 베드로를 진심으로 맞이하셨습니다.
아침식사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습니다.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부르기에는 너무도 여리고 약해진 베드로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무도 인간적인 베드로의 본래의 모습에 맞게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이름을 쓰셨습니다.
이 이름에는 그 어떤 가식도 허례와 허식도 없습니다. 사장님이니, 박사님이니, 목사님이니, 장로님이니, 권사님이니 하는 그런 가식적인 이름이 아니라, 개똥아, 철수야, 순이야 하는 식의 적나라한 이름을 부르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예와 권세와 돈으로 치장한 가식적이고 허식뿐인 그런 이름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는 순수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4월 한 달 동안 쓰리고 아픈 경험들을 많아 겪었고, 상하고 깨진 심령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감출 것도 속일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였고,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바위라 하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런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새롭게 소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17절에 예수님은 세 번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처음 두 번의 물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에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 곧 희생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의 뜻으로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두 번 다 필레오의 사랑 곧 친구로써의 사랑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는데, 베드로는 “예, 당신을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한때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노라고 큰소리쳤던 사람이었습니다(마 26:33).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노라 장담했던 사람이었습니다(요 13:37). 그러니 감히 어떻게 배신자였던 자가 “예, 내가 주님을 다른 누구보다 더 사랑합니다.”고 대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베드로의 심정을 아신 예수님은 세 번째 물음에서는 그러면 “네가 나를 좋아하느냐?”고 물으셨고, 슬퍼하고 근심하면서 “예수님, 모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입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고백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우리의 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최상급을 쓰셨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사람들, 곧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 동료들, 동호회 회원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것들, 곧 너의 직장보다, 너의 재산보다, 너의 물질보다, 명예보다, 권세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심지어는 일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게임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1977년 8월 한 달간 선교센터에서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과 함께 대학원과정의 선교교육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처음 말레이시아 학생으로부터 배운 노래가 생각납니다. 다같이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시몬아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주님만이 아십니다.
사랑하는 시몬아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주님만이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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