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20: 문명의 발전과 해체(창 1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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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20: 문명의 발전과 해체(창 11:1-32)
바벨문명이 파멸을 맞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바벨문명은 쇠퇴와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바벨문명의 파멸의 원인은 인간들의 오만 때문이었습니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과거 지구상에서 한 때 찬란한 꽃을 피웠다가 멸망한 21개의 문명들을 연구해 보았는데, 그 가운데 19개가 ‘내부의 적’인 ‘오만’ 또는 ‘자기우상숭배’로 인해서 쇠퇴와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쇠퇴되고 해체되는 이 비극적인 운명을 토인비는 오만에 대한 ‘응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문명은 어쩌면 인간들의 끊임없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인간의 문명을 세속문명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5장 5절이 밝힌 대로, 사람이 하는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 데에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그 근본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전혀 나쁘다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매우 훌륭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있고, 또 그분의 은혜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아주 분명한 사실을 너무 자주 망각한다는데 그 비극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벨레로폰이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황금고삐를 얻어서 천마 페가소스를 붙잡아 타고 괴물 키마이라를 죽이는데 성공하여 영웅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가 신에게 바친 믿음 때문에 입은 신의 은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벨레로폰은 자기가 잘나서 그리된 줄로 착각하였고, 신들의 보좌에까지 오르겠다는 오만한 계획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 불과한 벨레로폰은 제우스신의 저주를 받아 ‘방황의 들’에 추락하였으며, 갈대숲덕분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그는 절름발이와 장님이 되어 세상을 ‘방황‘하다가 쓸쓸하게 죽었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지성의 날개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요 축복일 수 있지만,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고 자만하는 순간, 인간은 추락하고 만다는 귀중한 교훈을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배웠으면 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지 않겠다고 약속한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왜 먹었습니까? 순간적으로 오만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5-6절을 보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란 말씀에서 아담과 이브는 정녕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고자했을 것이란 추론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14장 12-19절을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시키며,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 하리로다. 열방의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빠진 주검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고 하였습니다. 한 때 그 영광이 새벽별처럼 빛났던 자가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는 오만과 자기우상숭배로 인해서 무덤에조차 묻히지 못하고, 음부 곧 깊은 웅덩이에 빠져, 버려진 나뭇가지처럼,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버려진 시체들에 짓눌리고, 발에 짓밟힌 시체와 같은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에게 언어에 혼잡이 오고 또 흩어지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벨문명에 도달한 자들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체결된 계약이 거듭해서 깨지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창세기 11장 4절의 말씀대로,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란 말씀을 보면, 인간은 오만하여 하늘보좌에까지 닿기를 원했고, 명예욕에 빠져 자신들의 이름 내기를 원했으며, 하나님을 대항하며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어혼잡이란 예상치 못한 재난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 온 지면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또 그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세상의 일이 결코 인간의 뜻대로 척척 되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테바이왕국의 왕비, 니오베가 신들의 저주를 받고 돌로 변하는 비극이 나옵니다. 니오베는 왜 돌이 되고 말았을까요? 그 이유는 그녀가 남보다 많은 것을 소유했다는 오만 때문이었습니다. 니오베는 자랑할 것들이 많았던 왕비였습니다. 남편 암피온이 어찌나 수금을 잘 탔던지 수금 소리만으로 돌을 들어 성벽을 쌓았던 왕이었고, 다스리고 있던 왕국도 자랑거리였고, 무엇보다도 아들 일곱, 딸 일곱, 도합 14명이나 되는 자녀들이 자랑거리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자기가 잘나서 이룬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언자의 설교내용을 무시하였고, 신들 앞에서 오만을 떨었습니다. 따라서 니오베는 신들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무서웠습니다. 신들은 니오베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니오베가 자랑으로 여겼던 14명의 자녀들의 목숨을 모두 빼앗아갔습니다. 자랑거리였던 니오베의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슬픔과 분노를 이기지 못한 니오베는 결국 돌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지혜, 인간의 능력, 인간이 쌓은 문명이 아무리 크고 엄청난 것이라고 해도,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 되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 될 때에는 그들이 소유한 은사, 그들이 소유한 물질이 그들에게 축복이 되지를 못하고, 그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창세기는 물론이고, 그리스 신화에서조차 교훈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재앙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다음 세대를 위한 일군들을 들어 세우십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이후에 셋과 에노스를 세우셨고, 홍수이후에는 노아와 셈을 세우셨으며, 바벨탑 사건이후에는 아브라함을 세우시고 계십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한 후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으셨던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지만, 인간에게 비극을 가져다준 역사적 태풍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은 폐허가 된 자리들을 수습하고 복구할 일군들을 들어 세우셨습니다. 폭풍의 현장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중심을 잃지 아니한 셋과 에노스, 노아와 셈, 아브라함을 들어 쓰셨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미래는 오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겸손에 있습니다. 경건성을 잃는 순간 인간은 추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언가 이뤘다는 자만이 인간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지혜, 인간이 가진 능력, 인간이 이룬 물질문명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겸손히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항하게 될 때에 인간은 파멸의 구덩이에 빠지고 맙니다. 선악과 사건이 그랬고, 홍수사건이 그랬고, 또 바벨탑 사건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좀 더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고, 겸손히 서도록 힘쓰고, 그분을 인정하고 높이는 일에 힘쓸 때, 하나님은 미약하지만 우리들을 들어 일군으로 세우실 줄 믿습니다. 바벨문명도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것을 보존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문명을 세운 인간들의 오만 때문이었습니다.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겸손히 엎드려 기도에 힘쓰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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