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를 위한 요한복음의 메시지(요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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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위한 요한복음의 메시지(요 1:1-28)
우리 교회는 빛과 생명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빛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신 교회, 변화의 주체자이면서 스스로 변치 않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 곧 변화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빛으로 흑암을 이기며, 질서로 혼돈을 통제하며, 생명으로 죽음을 지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원하는 교회입니다. 이는 모두 요한복음서의 가르침에 근거한 내용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몇 차례에 나눠서 요한복음의 전반부인 1장부터 12장까지를 복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 곧 전반부의 전체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 1절에서 “말씀”은 헬라어 ‘로고스’(Logos)를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40?~? BC)는 이 로고스를 “변화의 주체자이면서 스스로 변치 않는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로고스가 빛과 생명,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모든 것이 끝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이 얼음이 되듯이 성질은 변치 않고 형태만 변하는 물리적 변화가 있는가하면, 산소와 수소가 만나서 물이 되는 경우처럼 형태뿐 아니라, 성질까지 변하는 화학변화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변화는 질서에서 혼돈에로 생명에서 죽음에로 극대화되는데, 이 법칙을 엔트로피(entropy) 또는 열역학2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법칙은 혼돈과 죽음의 법칙입니다. 율법도 여기에 속합니다.
누구도 이 자연의 변화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한 때 꽃다운 청춘이라도 노인이 되는 물리적 변화를 거쳐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화학적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하면서, 흘러가는 강물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도 솔로몬처럼 만물의 끝없는 변화 속에서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를 벗은 불변의 진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진리를 ‘로고스’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말하는 로고스는 우리말로 ‘법칙’ 또는 ‘도리’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법칙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면서도 스스로는 결코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로고스’를 ‘말씀’이라고 해석하면서 변증법적 ‘도리’나 ‘법칙’을 뛰어넘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으며, 만물의 근원이시며, 유한한 존재요, 끝없이 변하는 우리에게 영생과 빛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Logos)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안에서 생겨난 것은 생명이었으니, 그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월은 가고 변해도 그 변화의 원리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로고스, 끝없이 변하는 굴레 속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빛을 주시는 말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믿음이 혼돈을 질서로, 흑암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에로 변화시키는 힘이요 권능입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 전반부의 내용은 변화 또는 회개가 주제입니다. 변화와 회개는 동의어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에서 천국은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혹은 교회를 뜻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새 천년시대가 열렸다’ ‘교회시대가 열렸다‘의 의미를 함축합니다. 누가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회개’한 사람, ‘변화’된 사람뿐입니다.
요한은 이 변화를 소위 모형론(typology)이란 방법을 통해서 소개합니다. 모세와 율법은 예수님과 복음의 그림자이며, 모세와 율법은 흑암과 죽음을, 예수님과 복음은 빛과 생명을 뜻합니다.
요한이 쓴 요한복음이나 계시록의 특징은 숫자 7에 있습니다. 이 숫자 7은 빛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숫자 6은 모세와 율법, 곧 마이너스 1(-1)를 상징하며, 숫자 8은 예수님과 복음, 곧 플러스 1(+1)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에는 7개의 표적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들은 빛과 생명으로 상징되는 새 시대를 위한 변화를 강조하는 것들이면서 모세의 표적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비교를 시켜 보겠습니다.
1. 새 시대를 위한 변화(요 2:1-11). 예수님은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는데, 이 표적의 의미는 유익하고 건설적인 변화, 분위기 쇄신, 넘친다(+1)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물을 피로 변화 시켰는데(출 7:14- 24), 그의 표적의 의미는 해를 끼치는 파괴적 변화, 분위기 침체, 또는 부족하다(-1)는 의미를 갖습니다.
2. 새 시대를 위한 믿음과 중생(요 4:46-54). 예수님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유대인 니고데모, 사마리아인 여성, 이방인 왕의 신하한테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중생의 체험이 나타납니다. 믿음과 중생이 남녀노소, 민족, 신분의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세는 가축을 죽게 하는 표적을 행합니다(출9:1-9). 이 두 표적의 특징은 주인이 직접 축복이나 재앙을 받지 아니하고, 그 소유물이 받는다는데 있습니다.
3. 새 시대를 위한 복음적 사고(요 5:1-18).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십니다. 이 표적은 개인의 고통을 고친 첫 번째 표적에 해당합니다. 이 표적에서 나타난 특징은 복음적 사고(思考), 유신론적 창조사고, 살림과 열림의 사고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언제나 살림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온몸에 독종이 나게 한 표적을 행하였습니다(출 9:8-12). 이 역시 몸에 고통을 준 첫 번째 표적에 해당합니다. 이 표적의 특징은 율법적 사고(思考), 무신론적 파괴적 사고, 죽임과 닫힘의 사고와 죽임의 일에 있습니다.
4. 새 시대를 위한 생명의 떡(요 6:1-15).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빈들에서 장정만 오천 명을 먹이십니다. 이는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 먹게 한 것과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집에서 가루통과 기름병의 가루와 기름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하지 않게 한 표적들의 원형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으면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하지 아니하는 영생을 얻는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인들에게 메뚜기 재앙(출 10:1-20)을 내림으로써 기근을 촉발시킵니다.
5. 새 시대를 위한 예수 영접(요 6:16-21).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십니다. 이 표적의 특징은 예수님을 영접하면 폭풍이 몰아치는 죽음의 위기에서도 건짐을 받는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에 뇌성과 우박의 재앙, 곧 자연재해(출 9:13-15)를 내리게 합니다.
6. 새 시대를 위한 세상의 빛(요 9:1-7). 예수님은 타고난 맹인을 고치십니다. 예수님은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영안이 열리면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에서 흑암재앙(출 10:22-23)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7.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영광(요 11:17-44).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생명과 기쁨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죽음에 생명을, 슬픔에 기쁨을 주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에서 장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출 11-12장). 생명에 죽음을, 기쁨에 통곡을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 전반부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믿음이 혼돈을 질서로, 흑암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임을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빛과 생명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빛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신 교회, 변화의 주체자이면서 스스로 변치 않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 곧 변화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빛으로 흑암을 이기며, 질서로 혼돈을 통제하며, 생명으로 죽음을 지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원하는 교회입니다. 이는 모두 요한복음서의 가르침에 근거한 내용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몇 차례에 나눠서 요한복음의 전반부인 1장부터 12장까지를 복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 곧 전반부의 전체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 1절에서 “말씀”은 헬라어 ‘로고스’(Logos)를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40?~? BC)는 이 로고스를 “변화의 주체자이면서 스스로 변치 않는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로고스가 빛과 생명,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모든 것이 끝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이 얼음이 되듯이 성질은 변치 않고 형태만 변하는 물리적 변화가 있는가하면, 산소와 수소가 만나서 물이 되는 경우처럼 형태뿐 아니라, 성질까지 변하는 화학변화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변화는 질서에서 혼돈에로 생명에서 죽음에로 극대화되는데, 이 법칙을 엔트로피(entropy) 또는 열역학2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법칙은 혼돈과 죽음의 법칙입니다. 율법도 여기에 속합니다.
누구도 이 자연의 변화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한 때 꽃다운 청춘이라도 노인이 되는 물리적 변화를 거쳐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화학적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하면서, 흘러가는 강물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도 솔로몬처럼 만물의 끝없는 변화 속에서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를 벗은 불변의 진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진리를 ‘로고스’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말하는 로고스는 우리말로 ‘법칙’ 또는 ‘도리’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법칙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면서도 스스로는 결코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로고스’를 ‘말씀’이라고 해석하면서 변증법적 ‘도리’나 ‘법칙’을 뛰어넘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으며, 만물의 근원이시며, 유한한 존재요, 끝없이 변하는 우리에게 영생과 빛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Logos)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안에서 생겨난 것은 생명이었으니, 그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월은 가고 변해도 그 변화의 원리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로고스, 끝없이 변하는 굴레 속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빛을 주시는 말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믿음이 혼돈을 질서로, 흑암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에로 변화시키는 힘이요 권능입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 전반부의 내용은 변화 또는 회개가 주제입니다. 변화와 회개는 동의어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에서 천국은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혹은 교회를 뜻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새 천년시대가 열렸다’ ‘교회시대가 열렸다‘의 의미를 함축합니다. 누가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회개’한 사람, ‘변화’된 사람뿐입니다.
요한은 이 변화를 소위 모형론(typology)이란 방법을 통해서 소개합니다. 모세와 율법은 예수님과 복음의 그림자이며, 모세와 율법은 흑암과 죽음을, 예수님과 복음은 빛과 생명을 뜻합니다.
요한이 쓴 요한복음이나 계시록의 특징은 숫자 7에 있습니다. 이 숫자 7은 빛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숫자 6은 모세와 율법, 곧 마이너스 1(-1)를 상징하며, 숫자 8은 예수님과 복음, 곧 플러스 1(+1)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에는 7개의 표적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들은 빛과 생명으로 상징되는 새 시대를 위한 변화를 강조하는 것들이면서 모세의 표적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비교를 시켜 보겠습니다.
1. 새 시대를 위한 변화(요 2:1-11). 예수님은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는데, 이 표적의 의미는 유익하고 건설적인 변화, 분위기 쇄신, 넘친다(+1)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물을 피로 변화 시켰는데(출 7:14- 24), 그의 표적의 의미는 해를 끼치는 파괴적 변화, 분위기 침체, 또는 부족하다(-1)는 의미를 갖습니다.
2. 새 시대를 위한 믿음과 중생(요 4:46-54). 예수님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유대인 니고데모, 사마리아인 여성, 이방인 왕의 신하한테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중생의 체험이 나타납니다. 믿음과 중생이 남녀노소, 민족, 신분의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세는 가축을 죽게 하는 표적을 행합니다(출9:1-9). 이 두 표적의 특징은 주인이 직접 축복이나 재앙을 받지 아니하고, 그 소유물이 받는다는데 있습니다.
3. 새 시대를 위한 복음적 사고(요 5:1-18).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십니다. 이 표적은 개인의 고통을 고친 첫 번째 표적에 해당합니다. 이 표적에서 나타난 특징은 복음적 사고(思考), 유신론적 창조사고, 살림과 열림의 사고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언제나 살림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온몸에 독종이 나게 한 표적을 행하였습니다(출 9:8-12). 이 역시 몸에 고통을 준 첫 번째 표적에 해당합니다. 이 표적의 특징은 율법적 사고(思考), 무신론적 파괴적 사고, 죽임과 닫힘의 사고와 죽임의 일에 있습니다.
4. 새 시대를 위한 생명의 떡(요 6:1-15).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빈들에서 장정만 오천 명을 먹이십니다. 이는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 먹게 한 것과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집에서 가루통과 기름병의 가루와 기름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하지 않게 한 표적들의 원형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으면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하지 아니하는 영생을 얻는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인들에게 메뚜기 재앙(출 10:1-20)을 내림으로써 기근을 촉발시킵니다.
5. 새 시대를 위한 예수 영접(요 6:16-21).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십니다. 이 표적의 특징은 예수님을 영접하면 폭풍이 몰아치는 죽음의 위기에서도 건짐을 받는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에 뇌성과 우박의 재앙, 곧 자연재해(출 9:13-15)를 내리게 합니다.
6. 새 시대를 위한 세상의 빛(요 9:1-7). 예수님은 타고난 맹인을 고치십니다. 예수님은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영안이 열리면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에서 흑암재앙(출 10:22-23)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7.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영광(요 11:17-44).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생명과 기쁨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죽음에 생명을, 슬픔에 기쁨을 주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에서 장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출 11-12장). 생명에 죽음을, 기쁨에 통곡을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 전반부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믿음이 혼돈을 질서로, 흑암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임을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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